당신은 술을 마시며 시계를 흘깃 쳐다본다. 지하철 막차가 끊긴다면 택시를 타야 하고 할증까지 물어야 한다. 술 취한 친구의 한탄을 10분 더 듣는 것이 할증 붙은 택시비보다 가치가 더 있는지 머릿속을 굴려보는 것이다. 물론 그런 한탄은 가치가 없다. 할증 택시 요금만 한 가치도 없고, 지하철 표만큼의 가치도 없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푸념부터 시작해, 당신의 친구를 괴롭히는 상사 이야기, 연락이 없는 애인 이야기, 그 애인의 의심스러운 새로운 상대, 슬프게 늙어가는 부모님의 이야기는 다음 날 술이 깨면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는 또다시 반복된다. 당신은 건성으로 듣다가 다시 시계를 쳐다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 친구 이야기도, 당신의 이야기도 사실은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그리고 술집에 모여 있는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거기서 거기다. 그러나 당신은 외롭다. 당신의 친구도, 술집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애인이 있든 없든, 좋은 직장이든 나쁜 직장이든 상관없다. 그래서 당신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다. 친구가 외로워 보여서, 당신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라서. 시간은 12시가 넘어버렸고, 어차피 늦을 바에 더 이상 나올 이야기가 없을 때까지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볼 참이다.
당신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잠시, 라고 생각할 때 시간은 멈춰주지 않는다. 그 잠시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뀔 만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일 뿐이다. 변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아래로 밀려 내려간다. 인생은 오르막길이다. 막연한 미래를 기대하며 잠시 다른 일을 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하지만 당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당신은 잠깐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그런 사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당신에게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는다. 버스는 떠났다. 기차도 택시도 오토바이도 모두 떠났다. 인생에 시간표 따위는 없다. 인생은 오르막길이다. 멈추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끄러지며 내려간다.
당신이 학생이라면 휴학서를 가방에 넣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당신이 전공하는 학과는 당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테니까. 대학 생활에 낭만을 기대했다면 한 달도 못 가서 실망했을 테고, 고등학교 때와 다름없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토익 시험과 공무원 준비, 취업 준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공부하고 있는 것은 당신이 공부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도서관에 숨어서 소설책을 읽고 있는 사이 다른 학생들은 열심히 미래를 향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길. 그리고 당신이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이야기하지 마라. 다 지나간 이야기다. 지금의 당신은 당신이 되고 싶었던 당신이 아니다. 이젠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지겹다. 지하철 표 한 장의 가치도 없음.
하지만 인스턴트커피를 연거푸 마시면서 오늘도 일을 한다. 그리고 인스턴트커피 속의 크림은 당신의 장에 차곡차곡 싸인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당신이 하고 싶어했던 일이 아니다. 크림은 진짜 우유가 아니라 우유맛이 나는 화학물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