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일 토요일

버버리 터치 포맨 리뷰


진한 알코올향(스킨향) 싫어한다. 중성적인 향수를 즐겨 쓴다. 남들 맡으라는 치장의 의미보단 내가 맡는게 좋아서. 'wear' perfume이 어떤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표현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는 오감 중 기억(추억)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후각이다. 일정 기간의 순간들은 향기로 기억된다. 일상에 변화가 생기거나 심경의 큰 변화가 생기면 향수를 바꾼다.



틈틈이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터치포맨은 너무 흔하지도 않고 스킨향도 심하지 않다고 하여 꼭 사야겠다기보단 그냥 후보군에 올려두고 올리브영에 들렸는데 유일하게 2만원 후반대로 세일 중이여서 바로 샀다(쇼핑은 가성비 제일주의). DP된 제품이 없어 시향은 따로 안했다. 사실 고백하자면 이렇게 바로 살 생각은 없었는데 술김이 큰 몫을 했다.


 


★★★☆(3.5점/5점) - 3.5보단 높게 주고 싶지만 4점은 확실히 아님

총평: 매력있는 중동 후추




향은 일단 남성향수의 세기를 상중하로 표시한다면 중.

탑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미들부터가 상당히 독특한데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나무향+흙향+아랍계 향신료. 오리엔탈의 느낌이 강한데, 거부감이 들지 않는 정도다. 때문에 흔하지 않은 향이지만 동시에 살짝 질리기 쉬운 향이다. 산다면 30ml가 딱 적당하다. 조향표에 풀이니 머스크니 이런게 있긴 한데 나와 같은 일반인이라면 못느낄걸.

어떤 향수의 향이 주는 이미지가 있다면, 왜 글쎄 그런거 있잖아.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의 현실에서 주인공의 상상으로 그대로 이어지다가 "저기요" 하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가며 향을 따라가게 된다. 소믈리에들이 와인 한모금 마시고 무슨 프랑스의 전원이 생각난다느니 하는걸 보고 코웃음을 치던 내가 이런 표현을 하게 될 줄이야. 오래살고 볼일이다.

한여름에는 never ever. 지속력은 6~7시간 정도로, 뚜왈렛치고 양호한 지속력이다. 스스로가 맡을 수 있는 정도라면 아침 9시에 나갈 때 뿌려도 저녁까진 남아있다. 분사력 좋고 나오는 양도 적당함. 한번도 불만 가져본 적 없음.





<Fragrantica 후기>

5점 만점 3.86점, 1200명 투표. (3.86이면 꽤 높은 점수대다)



- 놀라운 향! Le male과 같은 향이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주된 향에서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나긴 합니다. 또 한편으론 남성스러운 머스크 향의 분위기가 있어요.



- 이건 저한텐 너무 매워요(peppery). It has a Millisime Imperial/ Love and Luck thing going on underneath of that heavy pepper...나쁘진 않지만 저한텐 아니네요. 끽해야 10점 만점에 6점.



- 향기가 정말 놀라워요. 좋습니다. 저는 달콤한 향 중독자라 향수를 엄청 수집하는데 버버리 터치 포맨의 향이 가진 매력(appeal)은 믿을 수가 없네요. 잠깐 앉아서 내가 무엇을 진짜 "향기"라고 불러야 할 지 생각하게 합니다.



- 악의는 없지만 터치포맨은 "진짜 남자"들만을 위한 향수에요. 당신이 만약 metrosexual이라면, 스키니진을 입는 남자라면, 이베이에서 가짜 구찌벨트를 사서 2살짜리 조카처럼 차려입는 남자라면 - 안 뿌리는 게 좋음.



- This is a fresh, masculine, a tad just a smidge powdery, 가슴털이 자라는,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촉진시키는 향수. 



- 세련됨, 비밀스러움, 섹시함. 버버리 터치 포맨에 대한 이미지는 이정도네요. 당신과 당신 주위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놀라운 향기를 오랫동안 즐기게 해주는 아름다운 지속력. 버버리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향수(This one is a class act all the way).



- 오늘 당신의 고환이 확실히 붙어 있는지 확인해 줄 남성 이발소 향, with 조금의 사향고양이(civet)향(조향표에 언급되진 않았지만 분명히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왜냐면 버버리 터치를 뿌린다면 분명히 필요해질테니까. 









추가: 오랜만에 다시 가보니 좋은 평이 많이 늘었다. 지속력을 찬양하는 후기가 많음



추가2: 군시절 동기와 향수 얘기를 했었는데 자기가 써본 것중엔 마크제이콥스의 레인이 제일 좋았다고 그만한 향수 없었다고 해서 이번에 꼭 사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단종된지 한~~참 된 제품이었다. 남들이 비슷하다던 클린 레인은 괜찮긴 한데 와 이거다 할 정도는 아니었고 세르주루텐 로는 너무 비싸서 중산층은 감히 시향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추가3: 이글을 쓴 뒤 3개월이 지난 지금은 내가 애용하는 향수가 되었다. 취향의 변화라기보단 적응이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예가 맞을지 모르겠는데, 베트남 쌀국수와 같은 느낌일까. 처음에는 경험하지 못한 향에 거부감이 들지만 몇번 먹다보면 서서히 적응되고, 그러다 어느날은 그 향이 갑자기 확 땡겨 쌀국수가 먹고 싶어지는 날이 오기 마련이다. 이제는 공부하다 턱을 괴었을 때 이 향이 안나면 정말 허전하다.


이글을 처음 썼을 때를 돌이켜보면 소위 '남성향수'에 내가 적응이 되지 못했던 시기여서 거부감을 느꼈지 싶다. 향수를 또 살 형편은 안되어 틈틈이 뿌리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향에 적응했고 이제는 진심으로 그 향이 끌린다. 룸메가 여태까지 살면서 향수를 한번도 안써봤는데 이 향수에 꽂혀서 내꺼 써도 되니까 쓰라고 그렇게 말해도 굳이 자기도 자기꺼 하나 사겠다고 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