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5일 목요일

예비군 4년차 동미참훈련 (2019/12/2 - 12/5)

16,17,18,19.. 예비군 4년차 젱.


사실 나는 예비군 훈련을 선호하는 편이다.

어차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라 시간낭비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 예비군 훈련을 받는 날만큼은 정말 마음 편하게 모든 걸 놓고 있어도 무방하다. 덧붙여 그 누구한테도 예의 신경쓸 것 없이 건들건들하게 다녀도 용인이 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마음의 휴식. 즐겁진 않지만 마음편함.


지금까지는 항상 하루하고 끝이어서 살짝 아쉬웠는데 이번엔 3박4일! 게다가 학생예비군 때는 기어이 산넘고 물건너 학교까지 가야 했으나 이제는 바로 동네에 있기까지 하다. 차라리 동원훈련을 가서 잠시나마 세상과 단절된 채로 군시절 생각도 해보고 사색에도 잠겨보고 연병장 구보도 해보고 싶었는데 동미참 출퇴근이라 아쉬웠다.


더 아쉬운 점은

- 예비군 5-6년차는 8시간 하루 교장와서 훈련 + 전후반기 각각 6시간씩 동대에서 작계,
- 예비군 7-8년차는 편성만 되고 훈련은 받지 않아

이제 내 인생에 하루 이상을 연속으로 예비군 훈련 받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점. 2017년 봄학기 휴학때 동원편성이었는데. 그때 가봤으면 어땠을까?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다는 걸 그때는 당연히 몰랐겠지만.




<1일차>

- 근 반년만에 월요일에 평소출근시간 8시까지 푹 자고 느긋하게 준비해서 갔다.

- A-11조 편성. 장비가 꽤 괜찮았다. 내 군시절 당직병만 입을 수 있었던 초A급 아이템 경량폭파조끼가 기본보급(!) 되는 점에 놀랐고, 당연히 폐급 하이바만 있을 줄 알았는데 지지대고 턱끈이고 다 잘 달려있어서 놀랐다. (물론 아무도 쓰진 않았지만)

- 오전엔 사색에 잠기고, 오후 실내교육 땐 눈치껏 잤다.



나름 나쁘지 않은 예비군 도시락. 그 누구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침묵 속에 먹었다.ㅋㅋ

- 전체 모집단(남성 한정)에서 추출된 표본집단 속에 속해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drive에 걸려 계속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내가 소속한(소속해왔던) 집단이 얼마나 상위 n%였는지 새삼 실감한다. 입대 후 신병교육대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 하기 싫은 걸 해야/할 줄 알아야 상위로 갈 수 있다.

- 나는 흡연자 속에 있어야 금연을 잘하는 스타일. 이 추운 날씨 속에도 쉬는시간마다 기계적으로 담배를 챙겨 우르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우월감.






- 16시쯤 퇴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귀가.

- 하루종일 대화를 하지 않으니 (타인과 엮이지 않으니) 너무나 힐링된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살 수는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테지만 가끔씩은.

- 이래서 템플스테이를 가나, 싶기도 하고 굳이 템플스테이를 갈 필요가 없겠다, 싶기도 하다.




- 방에 돌아오니 노을이 방을 한가득 비추고 있었다: 내 방이 이렇게 밝았었나? 평일엔 노을보며 퇴근하고 싶다.






- 저녁엔 돼지갈비를 먹고, 오랜만에 내손동 커피볶는 고양이에 들러 옛 감성에 2분간 젖고 왔다.






- 범계에도 들러 예비군 훈련간 읽을 포켓북과 필요했던 잠옷을 샀고, 우연한 기회에 베이비 그루트 인형도 살 수 있었다.

- 아주 어둡게 하고 잠을 청하자, 예전에 느끼던 슬프고 외로운 감정이, 스며들었다. 어떻게 버텨냈던 걸까 나는?

- "남는 일"을 해야겠다. 얼마남지 않은 20대를 헛되이(=남지 않는 일을 하며) 보내진 말자.

-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하루하루의 기록을 남겨야겠다. 간단하게라도.





<2일차>

- 아침에 훨씬 개운했다. 말을 안하니까, 감정소모가 없으니까 체력소모가 확실히 덜한 걸까.

- 어제 대충 돌아가는 걸 봐둔만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여유를 즐기고 08시 59분에 입소했다. B-5조에 편성됐다.




- 오전 실내교육. 어제 잠을 푹 자서 졸리지도 않고.. 80년대에 찍은듯한 영상교육자료는 이미 수년전 연천 어딘가에서 봤던 것 같고.. 심히 무료했다. 

- 어제 교보문고에서 산 포켓북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기 시작했는데, 흡입력 있는 이야기에 순식간에 쉬는시간도 잊고 몰입했다. 

- 군대만큼 간접흡연에 관대한 곳도 없는 것 같다. 진지하게 흡연권이 혐연권보다 우선시되는 것 같기도. 

- 11시쯤 되자 2019년 첫눈이 내렸다. 느리게 멈춘듯이 내리는 눈. 




- B조의 치명적인 단점은 점심밥을 강당에서 먹게 된다는 점이었다. (A조는 식당) 의자가 교회식 의자라 받침대 길이가 부족하다. 순간 방심하면 뒤집어 엎어먹기 딱 좋음. 상상만 해도 최악이다. 도시락을 한손으로 잡고 불안불안하게 먹으며 내일은 절묘한 타이밍에 입소해 A조 뒷번 쯤으로 배정받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오후엔 사격. 난 사격을 좋아한다. 특유의 위험성 때문에 강제로 집중해야 하는, 다른 모든 걸 잊고 몰입하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 20대 초반에 소총사격을 할 때에도, 20대 중반에 권총사격을 할 때에도, 사격장에 들어서며 맡는 화약냄새에 묘하게 흥분되곤 했다.

- 사격을 할 때면 항상 모든 소지품들을 꺼내두고 최대한 가볍게 입은 채로 쐈는데, 오늘은 물티슈/지갑/핸드크림/장갑/수첩과 필기구에 포켓북까지.. 유독 소지품이 많아 이걸 다 꺼낼까 말까 고민이 됐다.

- 주렁주렁 달고서도 잘 쏴야지 ㅡ 핸디캡이 있는 상황에서도 평소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어야 잘하는 사람이지 ㅡ 하는 생각에 모든 걸 그대로 둔 채로 사격했다.

- 나는 내 리듬으로 쏘는 게 좋다. 제한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특히 완사일 때, 모두가 사격을 마치고 조용한 와중 나 혼자 남아 집중하고 있을 때, 내 총소리만 울릴 때가 좋다.

- 항상 챙기는 사격용 안경(1.8/1.8로 맞춰둔 준 돋보기급 안경) 덕분인지 잘 쏴서 표적지를 허락받고 찍어둘까 하다가 말았다.

- 퇴소를 기다리는데 외설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는 뒷자리 무리들. 귀마개를 낄 수 없다는 게 대단히 아쉬웠다.






- 퇴소하고서는 계원예대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갈 생각에 이리저리 둘러보다 구석진 곳에 숨어있는 듯한 초밥집 한 곳('미소스시')을 발견했다.

- 네온사인 간판, 칙칙한 푸른 빛의 조명, 냉장고 웅웅 소리, 종종 끊기는 아날로그 TV. 너무나 좋아하는 80말 90초 시티팝 분위기.

- 주방장 분이 "휴가 나오신거냐"고 묻길래 "그러고 싶네요" 하고 대답했다. 

- 따뜻한 사케한잔을 시켜 인간실격을 마저 읽으며 초밥을 먹었다. 

- 문득 나는 오늘같은 하루에 normal happiness 를 느끼지 않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오전에 일어나 햇빛도 받고 몸도 움직이며 생산적인 일을 하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독서도 하고 메모도 하며 사색에 깊이 빠지는 하루.

- 생각해보면 쉬는 날에도 대화는 거의 하지 않는다 (노래를 뺀다면). 약속이 있는 날엔 약속장소에 나가 첫 대화를 하면 '다른 mode로의 스위치가 켜진' 느낌.




- 커피를 먹는다면 원픽은 당연 아인슈페너지만 아인슈페너를 취급하는 카페는 그리 많지 않다. 카페 이곳저곳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가 cafe-in 이라는 카페에서 아인슈페너를 마셨다.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서사도 서사지만 모든 내용이 끝나고 난 후 <작가의 삶> 부분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 영화 조커를 봤을 때와 비슷한 여운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아, 돌아오는 버스에선 눈을 감고 그가 생을 마감한 방식의 장면을 상상했다. 



- 눈 대신 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불순물이 낀듯한 폐를 정화시키러 뛰러 나왔다. 유별나게 상쾌했다.






<3일차>



- 절묘한 타이밍으로 A-12조 편성... 되었지만 1번으로 조장을 맡게 됐다.

- 오전엔 (상대적으로) 젊은 교관분이 오셨는데,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신교대 때도 그런 교관이 있었다. 그 교관이 자기 좌우명이라며 항상 했던 말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오직 긍정적인 사람만이 앞길을 헤쳐나갈 힘을 얻는다 였었나.

- 나는 그런 over-positive 한 사람들이 신기하고, 매력있다고도 생각하지만 동시에 나와 어울릴 것 같지는 않다고도 생각한다.

- "피곤하시면 허리펴고 턱 당기고 바른 자세로 주무세요. 그렇지 않다? 마음 편하게 먹고 즐기세요!" 




- 점심밥을 먹고는 이어폰을 꽂고 MCR을 들으며 광합성 겸 산책을 했다.

- 오후 교육 중엔 우연히 영감을 주는 내용이 있어 메모했다.
[위장 = 주위환경과의 조화. 과도한 위장은 오히려 눈에 띔.]
[현대전은 각개전투. 각 개인은 각개전투요원.]
[검문대상: 사복을 어색하게 입은 자]  (나...?)

- 지정된 흡연구역을 벗어나 비흡연자가 왕래하는 곳에서 흡연하는 사람
교관에게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무척 예외적으로 건방지게 대하는 사람
사전공지된 장소에 혼자 지각하여 나머지 조원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사람

뭐라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여기서 싸우면 다른 건 둘째치고 '강제퇴소'라는 특별한 패널티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결한 직장에서도 문제가 되고, 난 이번 차수가 마지막 기회기 때문에 이번 훈련을 놓치면 고발당하고, 언젠가 또 한번 번거롭게 훈련을 받아야 하고.

- 난 참지 말아야 할 땐 참지 않는다는 신조를 굳히고 있지만, 반대로 합리적으로 참아야 할 때는 참아야 한다.

- 더욱 중요한 건 전자:후자 의 비중은 정확히 5:5 로 동일해야 한다. 참아야할 때와 참지 말아야 할 때를 가리지 않고 폭력성이 짙은 사적구제를 하는 것은 과잉방위이고, 둘을 구분하는 것은 정당한 자기방어의 범주일 것이다.

-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호혜의 새로운 의미를 깨달았다.

- (+)가 아니라, (-)(-)로 양수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왜? 피차 번거롭고 피곤하니까···





- A조라 16시 전에 일찍 끝났다. B조 사람들이 몰려 나오기 전 PX에 들러 추억의 맛다시를 포함해 이것저것 샀다. 크림 스파게티를 보며 매복의 기억에 젖었다. 




- 그간 위병소를 나오면서 계속 초병에게 수고하라고 한마디 해줬는데 오늘은 없었다(????)




- 올해 7월 이사할 때 백운밸리와 함께 후보에 있었던 곳이 여기 반도보라였다.

- 여기로 왔으면 이전까지와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생활양식이었겠지? 교통때문에 힘들긴 해도, 새로운 생활을 경험한 지금 선택에 더 만족한다. 힘든 건 이미 버티고 끝난 거니까.





- 롯데마트에 들러 볶음밥을 먹고 들어갔다. XO장에 볶은 듯 한데 맛있었다.

- 밤에는 미레와 통화했다. 이전 직업일 때 통화했으니 정말 오랜만인듯. 첫 휴가는 일본으로 가서 미레를 포함한 애들을 만나기로 했다.






<4일차>



- 마지막 날. 다시 한번 절묘한 타이밍(중학생 때 즐겼던 동명의 핸드폰 게임이 떠올랐다 - 절묘! )을 노려보았지만 실패하고 B-2조에 편성됨.

- 잠이 최고의 보약이군. 하루종일 피곤하지 않았다.

- 굉장히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가진 사람을 봤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문신 정도는 우습지도 않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지금 내 특이함의 기준은 상당히 높음에도 확실히 유별나게 특이했다.

-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자니 그의 후드티에 적혀 있는 "it's none of your fucking business" ··· 그래 맞지. 내가 신경쓸 건 아니지.




- 평소에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야 핸드크림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 쩍쩍 갈라지고 아주 난리가 남. 여윽시 작은 것의 소중함을 되새겨주는 군대. 

- 동생의 데메테르 핸드크림을 훔쳐 썼는데 흡수력이 뛰어나서 마음에 들었다. 보통 핸드크림을 바르면 유분기 때문에 뭘 해도 미끌미끌 장애가 되는 그 상태가 싫었는데. 





- 불안한 받침대를 두고 밥을 먹느니 차라리 서서 먹는 게 낫겠다 싶어 서서 먹었다. 훨씬 편하고 괜찮았다.

- 모 로펌을 패러디한 듯한 김 제조사명에 낄낄 웃었다. 

- 오후 교육땐 교관이 내 앞을 지나가는데도 멍하니 딴 곳을 보고 있다가 문득, 이곳만큼 사람이 말하는데 신경안쓰는 곳이 있을까? ㅋㅋㅋ






- 어느새 마지막.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그새 정이 든 건지, 내가 정이 빨리 드는 사람인 건지, 아니면 사람은 원래 있을 땐 모르다가도 헤어질 때 되면 부랴부랴 아쉬움이 쫓아오는 건지.

- 다음에 이곳에 올 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지금하고 얼마나 다를까?


















- 한 교장엔 앞문과 뒷문이 있었다. 그 교장을 가득메운 인원들은 대부분 뒷문을 이용했다. 누가봐도 출입에 이용하라고 해둔 문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 앞자리에 앉게 된 나는, 잠깐 바람을 쐴까 해서 나가려다가, 뒷문 줄이 너무 길어 앞문으로 나가려고 했다. 살짝 밀어보자 열리지 않았다. 역시 잠궈뒀군, 하고 돌아서자 내 뒤에 있던 사람이 끼이익 하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세게 밀면 열리는 문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안열리겠거니,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살짝 밀어보는' 형식적인 노력만 해보고는, 거봐 안되잖아, 처음부터 포기하고 그냥 뒷문으로 갈 걸, 하는 잘못된 결론에 빠지고 만 것이다.



















- 이번 예비군 훈련 동안은 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고, 나는 나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 군 말년 휴가때 핸드폰을 켜면 세상에서 지워진 느낌이 들었었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느낌, 나 없이도 다들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느낌.

- 지금은 어떠한가? 나는 누군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인가? 내가 없으면 차질이 생기는, 다시말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가?





















- 군시절 나에겐 전투화 두 켤레가 있었다. 하나는 입대하며 보급받은 신형 전투화, 하나는 선임이 선물해준 구형 전투화. 신형 전투화는 내 사이즈에 정확히 맞았고, 구형 전투화는 반치수 정도 컸다.

- 나는 휴가를 나올 때마다 구형 전투화를 신었고, 전역도 구형 전투화를 신고 했다. 전부 가죽으로 된 구형이 조금 더 외관이 멋있어 보였다.

- 하지만 매년 예비군 훈련을 올 때마다 신형을 신고 전역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볍고 껄떡이지 않고 통풍이 잘 됐던 신형 전투화에 비해 구형은 무겁고 불편했다. 신형과는 모진 수색과 매복, 수많은 족구와 구보를 함께한 추억도 있었는데.

- 내꺼. 진짜 의미를 둔다면, 남의 것 말고 내 것에 둬야 한다.

- '남의 것' 이라고 한다면 '한때 남의 것이었지만 지금은 내 것인 것',

- '내 것' 이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오롯이 내 것이었던 것' 이라고 할 수 있을테지.

- 한편으론, 만약 위와 같이 정의한다면, '남의 것'이라고 무작정 배척하기보단, 현재 내 소유인 이상 과거는 묻지 않고 아껴줄 필요도 있다. 어찌됐든 나는 지금 구형 전투화를 신고 있고, 앞으로 최소한 2년은 더 신어야 한다.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거니까, 어쩌면 나는 이 전투화와 함께 생사를 넘나드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대원칙은, 2019년을 마무리하는 내 소원은,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내가 지켜왔던 나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렇게 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게 해주세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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