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2일 목요일

이문동 나들이


외대앞역을 건너서는 거의 나가본 일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강남에 내려갔다 오는 길에 일부러 버스를 탔다. 초여름의 한남대교는 사람을 들뜨게 한다. 건너편 이문동에 내려서는 광합성을 즐기며 학교까지 걸었다. 조용하고 인적이 없어 좋았다. 사람 북적이는건 그래야 할 때를 빼고 정말 싫다.


부천 외할머니댁 근처엔 이런 골목이 많다. 중학생 때부터 가끔씩 친구들과 모든 연락을 끊고 외할머니댁에 가서 있고 싶은 만큼 지내다 왔었다. 그게 현실도피라는걸 그때는 몰랐겠지. 할아버지는 맨날 늦게까지 자는 나를 기다렸다가 해장국을 사주시곤 했었다. 성격이 급하셔서 걸음도 항상 나보다 5걸음 앞서 걸으셨고, 해장국집에 가서도 계산만 하고 먼저 들어가셨다.


그렇게 해장국을 먹고 나면 항상 부천에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땐 어딜가서 뭘 하던 너무 재밌었다. 내 인생 최초의 자유였으니까. 조금씩 나이를 먹어 가면서 여전히 난 혼자 돌아다니는걸 좋아했지만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난 언젠가 이런 골목길 어느 집에 조용히 숨어 사는 삶을 꿈꿨었다. 꽤 오랫동안. 어쨌든. 부천썰은 다음에 부천을 가게 되면 한울빛도서관 근처 조용한 카페에 앉아 이것저것 풀어보는 걸로.  


난 오르막을 보면 설렌다. 정신병인가, 군생활의 후유증인가. 홍대에 분명히 비슷한 골목이 있다.


그렇게 쭉 걸으니 갑자기 익숙한 풍경을 다시 마주쳤다. 쫓겨나온 느낌. 너가 아무리 그러고 싶어도 넌 여기 사람이 될 순 없지. 눈감고도 그릴 정도로 익숙한 외대앞역을 바라보며 내가 그동안 스스로의 활동반경을 너무 좁게 정의해온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정문에선 친구를 우연히 만나 사과관까지 걸으면서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행적을 대충 얘기하자 long journey였네, 하며 웃었다. 표현이 참 재미있다. 인생 마지막에 하는 얘기랑 중의적이잖아. 앞으로 학기중 평일나들이의 제목은 long jou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