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울산 출장 1



2019/12/16(월) - 1일차


울산출장 1일차.
떠나기 전날 밤엔 침대와 책상의 위치를 바꿔두고 청소도 싹 해뒀다. 가서 3박 4일동안 바람도 쐬고 머리도 비우고 돌아왔을 때의 새로운 마음이 조금 더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08시17분 광명역 출발.

KTX 광명역은 인천국제공항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
말하자면 서울역과 수원역은 지하철·버스·약속장소 등 얼마든지 일상 중에라도 거칠 수 있는 장소지만, 광명역이나 인천공항은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진짜 떠날 때에만' 오게 되는 곳이니까. (사실 그런 기분이 좋아서 '진짜 떠나지 않을 때'에도 몇번 와봤는데, 그렇게 오면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양말을 짝짝이로 신은 듯한 부조화스러운 기분이 사알짝 든다)












출근을 기차로 해보는 건 처음이다.
혼자 가는 국내출장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나로서는 더더욱.


아침기차를 타자 상상했던 그대로의 풍경이 펼쳐졌다.
가득 들어오는 햇살, 규칙적인 백색소음, 조용한 실내 -
차분해지는 마음, 빙그레 지어지는 미소.






(그 유명한 5호차 1A석. 
과연 압도적으로 편하긴 하지만 역시 출입구 쪽인 관계로 소음이 있음.)










10시 20분 울산역 도착.
2시간 만에 300km 떨어진 곳에 왔다. 
철도를 이용할 때마다 느끼는 첫번째는, 나는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거짓말처럼 먼 곳에도  순식간에 올 수 있다는 사실. 평소라면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했을 환경 속에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은 나에게 이런저런 물음을 던진다. 








느끼는 두번째는,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
어떤 사실은 ㅡ 비록 그것이 평소에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ㅡ 실제로 몸에 와닿을 때 크게 느껴진다.

이쁜 사람 멋진 사람 매력있는 사람 세상에 깔리고 깔림 - 그동안 나는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하지만 또 반대로, 지금 나는 너무 넓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 그런 사람들과는 스쳐가는 인연에 불과하니까, 아니, '스쳐간다'고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초단편적인, 아마 지금 지나가면 매우 높은 확률로 두번 다시 볼일 없을 사람들이니까.






울산역을 뒤로 하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경부선 울산역은 실제 울산 도심보다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버스 안에서 호텔 어플로 호다닥 검색 후 예약한 '울산시티호텔'에 체크인 하고, 점심도 먹을겸 근처를 돌아다녔다. 







(못보던 버스색. 신기하고 커여웠다.)





점심으론 뭘 먹을까 하다가 오랜만에 라멘을 먹었다. 남쪽나라답게 따뜻하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라멘도 먹고 배도 부르고 해서 아인슈페너까지 기분내서 한잔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일부러 아인슈페너를 취급할 것 같은 고급져보이는 카페에 들어가봤더니 - 아인슈페너만 카테고리가 따로 있을 정도로 '찐'! 야무지게 홀짝홀짝 마셨다. 퀄리티는 만족스러웠다.











첫날 일정을 끝내고, 호텔 카운터에 맡겨둔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 보니 깔끔한 객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외박해야 할 일이 있을 땐 호텔이 아니면 꺼려진다. 어렸을 때 '불편해도 참고 눈만 잠깐 붙인다고 생각하자'고 이용했던 찜질방, 싸구려 모텔 등은 이제 과거의 추억 즈음으로 묻어 두려고. 왕복 80km를 통학하던 나는, 시험 등이 다가오면 종종 밤늦게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청량리 찜질방에서 대충 잠을 자고 다음날 1교시에 가곤 했다. 여기저기 코고는 소리 알람 소리에 자는둥 마는둥 했었는데. 이젠, 호텔에서 조용히 방해받지 않고 쉴 만한 경제력은 있으니···








짐을 풀고는, 현지 직원에게 추천받은 수산시장에 가서 동료들과 한잔 했다. 역시 항구도시라 그런지 해산물의 질이 킹왕장이었다. 현지 직원분은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기 좋은 곳이죠' 했었는데 ㅋㅋㅋㅋ 테이블 구조를 보니 이해가 됐다. 우리도 옆 테이블 아재분들이 맛 보라고 주신 회도 얻어먹고 건배도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말을 섞기 시작했다면 좀 피곤했을텐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엔, 불그스름한 얼굴로 별 거 아닌 농담에 깔깔깔 웃고 비틀거리며,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된다니 너무 좋다, 조금만 걸으면 편하게 잘 수 있는 숙소라니 너무 좋다, 고 진심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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