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3 (금)
지루할 것 같던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은 20시30분, 장소는 찜질방이다. 어우... 오늘 정말 징하게 걸어다녔다. 노량진에서 H와 한강 걸은 이래로 이렇게 많이 걸어본 적은 처음이다. 지금 걱정되는건 디카다. 매점주인분께 콘센트 남는게 있으시냐고 여쭤봤지만 없으시댄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봤더니 런닝머신 쪽에 남는 콘센트가 있길래 거기다 꽂아두고 따뜻한 찜질방에 배깔고 누워 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나가야겠다. 힘들게 씻었는데 괜히 또 땀낼 필요는 없지.
자 다시 처음으로. 목포역에서 내린 후 역내에 있던 안내소에서 지도를 얻었다. 대반동 해변길을 가려고 목포항 쪽으로 내려가는데 길이 꽤나 복잡했다. 그냥 시골길이라 큰 건물이 없어서 찾기가 힘들었다. 가는 길에 어떤 산책하시는 노부부께 길을 물었다. 아주머니는 내 팔을 붙잡으면서 친절히 설명해주셨고 자기가 하는 집이라며 음식점 명함도 한 장 주셨다. 물론 가지는 않았다. 목포항에서 처음 바다를 봤는데, 내가 여태까지 본 바다들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바다였다. 목포항은 항구의 로망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멋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너무 시퍼래서 슬픈 겨울 하늘.
진짜 바람이 무지하게 불었다. 바람쐬러 왔는데 말 그대로 바람만 쐬고 있었다. 뭐 기분이 나쁘거나 한 건 아니었고. 머리는 이제 그냥 바람이 어디서 부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졌다. 바다사진은 몇 장 찍었지만 내 사진은 거의 못찍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카메라를 세워둘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중간쯤에 산책하시는 할아버지께 사진을 부탁드렸지만 타이머 끄는걸 깜빡하는 바람에 멋지게 작살났다. 게다가 그 할아버지는 처음에 카메라를 거꾸로 들고 계시기도 했다. "이거 어디로 찍는것이여?"ㅋㅋㅋㅋ
하튼 그렇게 엄청난 맞바람을 맞으며 끝없는 해변길을 주구장창 걸었다. 걸으면서 "내가 왜 걷지?"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들었다. 왜냐면 노량진에서 '그냥 걷기'를 보고 나도 '그냥 걷는 여행'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르고, 죽지 못해 살고, 나는 차가 없어서 걷는다. 계속 걸으면서 사진 찍고...쉬고....그러기를 반복했다.
슬슬 배가 고파서 유달해수욕장에 있던 음식점에서 갈치조림을 먹으려고 들어갔는데 전기밥솥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고 아무도 없었다. 구조도 좀 이상했다. 그냥 나와서 이번엔 그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물이나 사려고 했더니 문이 잠겨 있었다. 사실 폐장된 해수욕장 옆자리가 무슨 장사가 될까. 어디 놀러갔겠지. 그렇게 앞으로 쭉 가니 목포해양대학이 나왔다. 바다에 초근접해있었다. 야...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는 태풍오면 수업은 커녕 등교도 못할 것 같다. 오늘 너무 징하게 걸었더니 21시를 조금 넘긴 이 시간에도 벌써 졸려온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마저 써야지.
(유달해수욕장에서. 카메라는 세워둘 수 있었지만 역광이란 점을 깜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