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4일 토요일

남도여행 (1)


2010.12.3 (금)


광명역까지 가는 길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매표소로 걸어가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대사 '가장 빨리 가장 멀리 가는 표로 주세요'를 성공적으로 읊었다. 목포였다. 광주행 KTX 10시35분 차를 타고 출발했다. 문제는 내가 창가쪽인데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그 자리에서 주무시고 계신다는 점이다. 그냥 말안하고 가련다. 이 기차가 목포직행이었으면 따질 법도 했지만 3~40분이면 가는 서대전에서 환승할건데 굳이 그럴 필요를 못느끼겠다.



여행? 여행이라고 딱히 기분이 달라지거나 그런 건 없다. 난 수능을 볼 때도 딱히 긴장되거나 떨리지 않았다. 이번 여행도 어제 새벽 1시부터 2시 30분까지 1시간 반만에 스케줄을 짰다. 큰 그림만 그려놨지 자세한 것도 없다. 사실 다 짜놓고 가면 뭐가 재밌을까. 작년에 잠시 들른 호주에서도 난 그냥 발가는대로 (정확히 말하자면 tram 가는대로) 돌아다녔고, 상당히 만족했었다.



두서없이 사는 것. 난 요즘 그렇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내 삶의 표어는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둥글둥글하게 살어야지. 하튼 이제 수능도 끝나고 했으니 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보자. 이번 여행에서는 실실 쪼개고 다녀야지.



어제 내가 잔 시간은? 오후 1시~오후 6시, 새벽 3시~아침 8시. 절대량만 따지면 충분히 잔 것 같지만 사람의 생체리듬이란게 무지하게 중요하단 사실을 노량진에 있을 때 뼈저리게 느꼈지. 그래도 그 때 아침 7시 쯤에 아침밥 먹고와서 시원한 바닐라라떼 한잔을 홀짝이며 컴퓨터로 IT crowd 틀어놓고 취침예약 20분 때리고 점점 잠들어가는 걸 느끼면서 잘 때는 무지하게 행복했다 ^__^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내가 지금 슬슬 졸려온다. 팔도 좀 아프고. 신문이랑 책 좀 보면서 서대전까지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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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전역에서의 20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머리길이 상당히 어정쩡해서 만지기 힘들었는데 강풍을 한 5분쯤 쐬니까 그마저도 엉망이 되어버렸다. 상관없다. 지금 기분이 상당히 괜찮다. 역시 사람은 바람을 좀 쐬야 되는가 보다. 항상 보던 곳, 항상 가는 곳만 다녀서 좀 지루했었는데. 이번 여행은 잘 온 것 같다. 하긴 돈들여 여행가면서 '괜히 왔어'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멍청한건가?


기차 안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 안산에서 타던 버스나 전철과 딱히 다른 건 없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좌석이 좀 편안하고 가는 곳이 종착역이라 마음놓고 잘 수 있다는 점? 안산에서 노량진 갈 때는 용산역, 심지어는 서울역까지 가본 적도 있다. 그 때 오고가는게 좀 힘들기는 했어도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집에서 편하게 지냈던 10월은 별로 기억에 안 남는거랑 같은 맥락인가? 따뜻하니까 슬슬 또다시 잠이 밀려온다. 어차피 목포가 종착역이니까 잠을 좀 자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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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았지만 금방 깼다. 예전부터 궁금했었는데, 잠이 안와도 눈을 감고 있으면 피로가 풀리는걸까? 아닌 것 같다. 그건 그냥 잠을 못자는 것에 대한 정신적인 자기만족이겠지.


창 밖은 광명이나 여기나 계~속 논밭이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느낀건데, 이런 풍경은 아무리 봐봤자 머릿속에 남지가 않는다. 지금은 익산역이다. 방금 내린 내 옆자리에 있던 학생은 전화해서 담임욕을 맛깔나게 하던데 힘들게 임용고시 패스해서 어린 학생들에게 뒷담화나 까이는 얼굴모를 그 분이 참 안쓰러웠다. 어쩌면 난 위선자일지도 모른다. 나도 학교다닐 때는 이런욕 저런욕 다 했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냐. 한 해 한 해 살아가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거지. 목포까진 아직도 한시간이나 남았다. 좀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