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2017년 12월 23일 토요일
자가진단
처참하게 끔찍한 무기력증에 빠져있다. 00증이라고 하면 왠지 '일시적인 증상' 내지는 '감기처럼 며칠 고생하면 자연히 없어질' 것 같은데 왜 나한테는 이렇게 오래 머무는지 모르겠다. 사실 무기력이라고 하면 정확한 말은 아니다. 기력이 없는 건 아니다. 의욕이 없는거지. 자신감은 더더욱 없고, 재미는 더더더욱 없고. 그냥 슬픈 마음이 가득하다.
그렇게 오늘은 무기력증의 정확한 증상과 진단이 궁금해져 검색해보다 연관 검색어로 뜨는 몇가지들에 대해 자가진단을 해보았다. 이하의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함.
1. 의존성 성격장애 분석
--> 성격"장애"라니 너무 무서운 단어의 조합이 아닌가...-_-
의존성 성격장애란, 주변 사람들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욕구가 지나쳐
--> 지나치다는 것에서 누구에게나 '보호받고자 하는 욕구'는 어느정도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나도 없는 건 아니고,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시간을 스스로 선택했던 적이 조금 있는 탓인지 평균보다는 조금 많은 것 같다.
자신의 의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매달리고, 의존 욕구가 거절될까 봐 무서워 다른 사람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순종적으로 응하는 인격장애를 말한다.
--> definitely not. 난 매달리는 타입은 확실히 아니다. 완전 만취해서 하는 전화는 정~~말 편한 사람한테만.
주변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리 불안이나 불안정한 대인 관계를 흔히 보이곤 한다.
--> 음.....두려움보단 작지만 아쉬움보단 큰 정도라고 하면 얼추 맞다. 좁고 깊게 사귀는지라 대인관계가 불안정하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다.
의존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낮은 자존감을 가진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자책하거나 스스로를 폄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자기 주장을 잘 펴지 못한다.
--> 자책이나 폄하는 맞다. 다만 낮은 자존감에 기인한다기보단 높은 자존감에 현실이 따라오질 못하는 영향이 크다. 자기 주장은 굉장히 잘 편다.
소결) 의존성 성격장애를 거칠게 요약하면 '지나친 예스맨' 정도가 될텐데 난 아닌 것 같다.
2. 회피성 성격장애 분석
--> 병명(?)을 보자마자 느낌이 확 왔다. 이거 나 맞는데...? 이런 증상이 실제로 있었구나.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혈액형이나 별자리처럼 '들으면 전부 내 얘기 같지만 사실 누구한테나 웬만하면 맞을 수 밖에 없게' 쓰여지지 않았는가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읽어보도록 한다.
회피성 성격장애는 거절에 대해 매우 예민***하고,
--> 인정. 완전 인정. 매우 매우 매우 예민하다. 그래서 거절당할, 상처받을 가능성이 어느정도 이상이면(계량화한다는게 웃기지만 굳이 하자면 20%쯤)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만이 대상이 아니다. 어떤 목표에 대해서도 똑같다.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인격장애이다.
--> '사회적으로 무기력'하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사회생활을 말하는 거면 글쎄. 그쪽으로 무기력한 것 같진 않은데.
자신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인간관계는 적극적으로 맺는다. 첫인상이 나쁘지만 않다면(예컨대 엘리트주의에 찌든 미쿡 유학생이라던지) 없는 연도 찾아 만드는 편이다. 다만 정말 속마음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관계(소름돋지만 어릴적부터 '내사람' 내지 '무조건 내 편'이라고 불러왔다)는 설명대로 '내가 조금 친하게 해도 나를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 특히 이성이라면 '내가 찝쩍대는 거라고 오해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과만 맺는 편이다. 에이 근데 이것도 누구나 그렇지 뭐.
거부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이 커서 오히려 혼자 지내려고 하지만***, 내적으로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특징이 있다.
--> 세상에....소름돋았다. 이 마찰이 대개 우울함의 시작이 되곤 한다. 친밀함(내 표현대로라면 "이해")을 원하지만 찾지 못할 것이 두려워 차라리 혼자가 되는 것. 하지만 후단에서 내적으로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평생유병률은 0.5~1% 정도이며 여성에서 잘 생긴다. 사회공포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 어느정도의 사회공포증은 가지고 있(었)다. 한창때는 버스정류장에조차 나가기가 무서웠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짐.
내향적이고 신경증의 성격이 강조된 형태이다.
--> 내향적인건 맞고, 히스테리는 부리지 않는다. 외국인 교수들은 1학년 때부터 하나같이 날 shy boy라고 했었다. 넌 비즈니스는 안어울린다는는 말과 함께. 괜찮아요 저도 웃으면서 영업하고 빈말하긴 싫은걸요. 편한 사람들과(만) 함께라면 미쳐날뛰긴 하는데 그건 뭐 누구나 그런거겠지.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행동억제 기능이 결여되어 있다면, 회피성 성격장애는 행동억제 기능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 맨정신엔 그렇지만 알코올 또는 카페인이 들어가면 억제가 과도하게 풀려버림....^ㅠ^ 장범준의 사말어사에서 좋아하는 구절은 '오늘은 보고 싶어서/ 연락할 이유를 찾고/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냥 난 집이나 갈래'
이런 기질적 특성과 함께 어릴 적부터 경험한 모욕감, 당황감, 가치 없는 느낌 같은 환경적 경험이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 모욕을 느낀 순간은 별로 없고....'가치 없는 느낌'은 격하게 공감. 그것만큼 나와 오래했던 느낌은 없었던 듯 싶다.
소심함, 수줍음, 근성 없는 성격과 내면에 과도한 자의식, 부적절감이나 열등감 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근성 없는 성격이라니... 팩트로 너무 쎄게 맞아서 아픕니당. 소심함과 수줍음은 인정.ㅋㅋㅋㅋㅋㅋ 낯을 무지하게 가린다. 딱 나서야 될 때(혹은 술을 너무 많이 먹었을 때)만 나서려고 한다. 과도한 자의식, 부적절감, 열등감은 인정합니다. 항상 있었어요.
자존심이 낮으며 거절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타인이 자기를 거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마음을 쓴다.
--> 거절에 대한 지나친 경계는 맞는데,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엔 그렇게 마음쓰지 않는다. 그냥 모든 일이 다 지나고 나면, 00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한 정도.
타인이 자기를 싫어하는 눈치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실망하고 모욕감을 느껴 사회 참여나 대인관계 형성의 기회를 놓친다.
--> 모욕감을 느끼진 않는다. 조용히 상처받지. 특히 내가 믿었던 사람이(20%미만의 사람이) 내 예상과 다르면 실망하는 것까지도 맞지만 모욕감을 느끼진 않는다. 말해봐요.....나한테....왜그랬어요....
대인관계 형성의 어려움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자존심을 상하기도 쉽다.
--> '1차적 관계'형성에는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항상 어려움을 느끼고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건 '2차적 관계'에서겠지.
혹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은둔적인 생활을 해 버린다.
--> 버뮤다에 가고 싶다고 항상 말했었지.
우울증, 불안장애, 타인에 대한 분노 등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 타인에 대한 분노는 없고 스스로에 대한 분노는 많다.
직업적인 영역에서는 대인관계가 요구되는 직업에 종사하기 어렵고, 수동적인 분야에서 일한다.
--> 말도 안돼.... 그래도 일단 써보긴 해야겠지...? 대인관계가 아주 좋고 능동적인 분야에서 항상 일해보고 싶었다는 거짓말도 자소서에 쓸거야.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장애 진단통계 편람(DSM-V)에 따른 진단 기준>
사회관계의 억제***, 부적절감, 그리고 부정적 평가에 대한 예민함이 광범위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 사회관계의 억제.....맞아요......ㅠ_ㅠ '부적절감'같은 용어는 원어를 병기해줬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이는 청년기에 시작되며 여러 상황에서 나타나고 다음 중 네 가지(또는 그 이상) 항목으로 나타난다.
1) 비판이나 거절, 인정받지 못함 등 때문에 의미 있는 대인 접촉이 관련되는 직업적 활동을 회피한다.
--> 영업이 싫긴 한데... 못할 것 같애서....
2) 자신을 좋아한다는 확신 없이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을 피한다.
--> 좋아한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아니다. 좋아한다는 말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신뢰한다'는게 더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3) 수치를 느끼거나 놀림 받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친근한 대인관계 이내로 자신을 제한한다.
--> 에이 그래도 남자새낀데 뭔 놀림이 두려워...ㅋㅋㅋㅋㅋ 후단은 200%
4) 사회적 상황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거절당하는 것에 대해 집착한다.
--> 집착이라고 하면 어감이 이상하지만 전반적으로 동의. 사실 그것 때문에 사회적 협동 상황에서 남들보다 더 노력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5) 부적절감으로 인해 새로운 대인관계를 맺는 것이 힘들다.
--> 상술했음.
6) 자신을 사회적으로 부적절하고, 개인적으로 매력이 없는, 다른 사람에 비해 열등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 요즘 내 생각을 정확히 표현한 문장.....ㅠ_ㅠ '매력이 없다'는건 진짜 어제 만취해서 집에 돌아오면서 블로그에 쓰다가 지운 글에 있는 문장이다. 진짜로.
7) 당황하는 인상을 줄까 봐 어떤 새로운 일에 관여하는 것을, 혹은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드물게 마지못해서 한다.
--> '당황하는 인상을 줄까 봐' 이거 왜 이렇게 귀엽지ㅋㅋㅋㅋㅋㅋㅋㅋ난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지만 새로운 일에 관여하는 것을 꺼리는 건 상당히 맞다.
결론) 80%정도 일치. 야 근데 완전 신기하다. 이런 증상? 병?이 진짜 있는 거였구나.
또 다른 증상들로 '경계성 성격장애', '연극성 성격장애(병명을 보고 두번째로 감탄했다)',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었는데 [요약]에서부터 나랑 완전히 달라서 따로 쓰진 않으려구. 반쯤 장난으로 해봤는데 오 생각보다 괜찮았다. 자가진단해보면서 몇번 낄낄대고 웃었으니 그걸로 만족. ^,,^
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남도여행 에필로그2
"제일 빨리, 제일 멀리 가는 곳으로 주세요"
7년전 이맘때쯤의 남도여행은 이 말로 시작했다. 18살의 나는 이 말을 오랫동안 참고 있었다. 7년을 돌이켜보면 그 말을 다시 해볼 수 있는 기회도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지 할 수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동안 있었던 많은 선택의 순간들에 대해서도.
지난주는 가까운 친구의 자취방에서 며칠 묵었다. 친구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친구네 집에 묵는 며칠동안 얼마나 다독여줬는지 모르겠다. 차마 말은 못했지만 사실 정말 진심어린 응원이 필요한 건 나였는데. 친구가 진지한 눈으로 너 좀 변한 것 같다고, 못 본 사이에 인성이 진짜 좋아졌다고 할 때는 내심 좀 뿌듯했다. '착한 사람을 떳떳하게 좋아할 만큼은 착한 사람이 되자'고 그동안 얼마나 다짐했던가! 하지만 집 앞 1m 거리에 있는 분리수거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기 귀찮으니 다음날 나갈 때 대신 버려달라는 친구에게 한심에 가득찬 눈빛을 보내자 친구는 "에센스 이즈 이터널, 본성은 변하지 않지"라는 명대사를 날리며 기가 막히게 태세를 전환했다.
마지막날 짐을 빼고 내려가면서 친구와 시립대 근처에서 고기에 술을 마셨다. 무슨 얘기를 하다 나왔는진 기억이 안나는데, 밥을 먹고 나와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디시인사이드 레전드 여행기 중 하나인 '그냥걷기'에 대한 말이 나왔다. 아마 내가 그 친구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해 줬을거다. 노량진에 있을 때 자기전에 잠깐 보려다가 해가 뜰 때까지 꼬박 읽었던 기억이 생생한 그 여행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오랜만에 생각나서 다시 읽으려다 이번에도 역시 새벽 늦게까지 정주행해버렸다.
여행기 마지막 편을 볼 때는 찡하기도 하면서 그 여행기를 읽고 떠났던 2010년의 남도여행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시험기간 내내 잠깐 떠났다 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이번에도 남쪽으로(북쪽으로 갈 순 없으니까, 이미 대한민국에서 갈 수 있는 최북단을 군시절 가봤으니까), 거제도 아니면 해남으로. 마지막날 직전에는 의욕이 다 빠져서 마치 이족보행하는 지렁이 내지는 포켓몬스터 마자용(보단 추워용)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학기가 끝났다는 약간의 면책권으로 따뜻한 집에서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남도여행기를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몸이 갔다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한번 쭉 정리하고 나면 뭔가 새로운걸 느끼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하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걷기'의 주인공처럼. 끝나고 나면 다시 똑같이 돌아올 뿐이다. 언젠가부터 내가 느끼는 기분은 결승선을 통과한 경주마라고 하면 조금 비슷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나는 경주마처럼 열심히 달려본 적이 없다. 열심히 달리는 건 둘째치고, 사실 나는 내가 원하는게 정확히 구체적으로 뭔지 모르겠고, 그걸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되는 지도 잘 모르겠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합당한 노력도 할 자신이 없다. 모르겠다. 지금은 그렇다. 그냥 아무 의욕이 없다. 맞다. 난 밋밋한 깡통이다. 가진건 아무것도 없는 팔다리도 없는 로봇깡통.
예전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 때의 나는, 최소한 '무의욕증'을 집어던지기 위해 "제일 빨리, 제일 멀리"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있었다. 지금의 나는 핑계만 늘었다. 귀찮고, 춥고, 돈도 없고,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2010년의 난 지금의 내가 2010년보단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는 강한 믿음으로 아무것도 없는 시간들을 버텨왔는데. 부끄럽다.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무슨 새로운 다짐을 할 건 아니다. 옛날 여행기를 한 번 되돌아봤다고 그런 motivation이 생길리가. 지금은 그냥 털어놓는 시간이라고 할까. 하나하나씩 꺼내놓으면서, 어떤 목표로 다시 의욕을 가져볼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는 시간. 그렇다. 그렇게 돌아보고 싶어서, 돌아보면서 같은 루트로 다시 상상 속 여행을 떠나보고 싶어서, 그때와 같은 길을 걸으며 다른 생각을 해보고 싶어서, 이번에 금고에 넣어두면 앞으로 다시 꺼내보지 않기 위해서 7년전 여행기를 한번 리마스터해봤다. 내 사진 좀 더 찍어둘걸. 아님 멍청하게 역광으로 찍질 말던가. 단발머리 청소년 젱(내 별명)의 모습이 궁금한데 영 다시보기 어렵다.
명사십리에서 나는, 강한 사람이 되자고, 아주 오랫동안 바다 앞에 앉아 다짐했었다.
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kleenex
기억과 감정은 상대적이다. 나에게는 100인 순간이 상대방에게는 10일 수 있는 것이고, 나에게 상대방은 one of one이어도 나는 상대방에게 one of them일 수 있는 것이다.
어젯밤엔 축축한 첫눈이 펑펑 내렸다. 작년 첫눈이 생각난다. 그때도 글을 남겼었다. 첫눈이라는 이벤트는 '작년 이때쯤 난 뭘했지'하고 돌아볼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주어서 좋다고 했었는데. 너무 좋아서 애처럼 방방 뛰어다녔던게 기억난다. 내년 첫눈이 내릴 때 오늘은 어떻게 기억될까.
술이 덜 깨 어지러운 머리와 로션 하나 바르지 못해 푸석한 얼굴로 면접을 보러갔다. 젊은 면접관의 얼굴을 마주보며, 어젯밤 00의 진심인지 가면인지 모를 웃음을 떠올렸고, 그 웃음을 잠시 빌려보았다. "하게되면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했었나. 맞다. 난 할 수 있었다.
딱 솔직해져야 하는 순간에만 완벽히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솔직해진다는 것은 순간의 감정에 이끌린 과장이나 덧붙임을 하지 않음을 포함한다.
2017년 10월 25일 수요일
세로토닌
어젯밤은 심란함과 우울함에 오랫동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아침엔 5톤짜리 추에 짓눌리고 있는듯한 끔찍하게 가라앉은 기분으로 샤워를 하며 요사이 극도로 불규칙한 수면패턴이 문제라는 자가진단을 내렸다. 별로 같은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 학교까지 걸어가며 검색해보니 '행복호로몬'인 세로토닌 분비량을 늘리려면 1) 햇빛을 많이 쬐고 2) 몸을 움직이고 3)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라고 했다.
12교시가 끝나고는 시청각1층에 멍하니 턱을 괴고 앉아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career goal에 대한 고민을 하다 답답한 마음에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Y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세로토닌 분비를 위해 커피한잔을 들고 한예종에 산책을 하러 갔다. 북적이는 정문이 싫어 후문으로 도망쳐온 후문파인 난 후문조차 북적일 때면 평소에도 종종 커피를 들고 한예종으로 도망치곤 한다.
재외국민 동기 Y는 예전부터 그랬는데, 요즘은 운동을 하면서 특히 더 심각할 정도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장착했다. 정말 아~~무 근심걱정이 없다. 비꼬는게 아니라 부러워서 그런다. 마음가짐이란게 원하는대로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게 아니니까. 이런 사람들은 만족의 기준점이 높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들을 행복으로 이끈다.
Y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항상 '쫓기는 나'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마다 나에게 '너는 정말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해준다. 위로인지, white lie인지, 빈말인지, 사실인지.
나는 이제 그냥 다 웃어넘기기로 했다. Y에게 '난 이제 심각하게 살지 않겠어'라고 다짐했다. 이미 몇년전 생일에 한번 했었던 다짐인것 같지만 뭐.
2017년 10월 13일 금요일
이야기
22시50분에 하기엔 미련한 짓일테지만 지금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다. 늦은 저녁으론 삼겹살을 먹었는데 먹고 나니 기름지고 해서... 무엇보다 오늘은 꼭 남기고 싶은 소감이 있기도 하고, 살짝 뜬 기분이 되고 싶기도 하고.
어제는 날밤을 새며 심리언어학 중간고사를 봤다. 잠을 자면 깨어있을 동안 입력된 정보를 뇌가 알아서 정리한다고 하는데, 시험보기 직전에 있는 법경제학 시간에 한시간 정도 냅다 엎드려 잔(시간맞춰 깨워준 S에게 감사의 인사를) 덕분인지 그럭저럭 잘 본 것 같다. 문제는 다들 잘 본 것 같다는거...영어과 수업의 가장 큰 함정. 영어과 시험에서 못 본거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면 그건 생각보다 훨씬 큰일난거다. 어떻게 아냐고? ㅎㅎㅎㅅㅂ
끝나고는 살짝 풀린 눈으로 전산실에 가서 장학금지원서를 써서 제출했다. 2년전 시험기간에도 한번 밤새서 시험보고 끝나자마자 급하게 자소서를 썼던 적이 있는것 같은데. 그때 썼던 자소서를 노트북 keeps라는 폴더에 보관하고 있는데, 가끔 심심할 때 보면 얼마나 투박한지 웃음이 나온다. 2년전 군인정신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던 나는 뭔가 자소서의 마지막 문장을 70년대 회사면접처럼 임팩트있게 끝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 엔진과 기름얘기는 정말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ㅋㅋㅋㅋㅋ 아무래도 난 2학기가 좋다. 그냥...789를 끝내고 나오면 적당히 어둑해져있고, 날씨가 추워 한적한 밖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고, 환한 인문관에서 학식을 대충 먹고 후문에서 따뜻한 커피한잔을 사서 시청각1층에서 공부를 하는 그 일상이 좋다. 생각해보니 높은 확률로 이번이 마지막 2학기네. 그래, 이번만큼은 마지막일때 마지막인걸 알아야지.
이쯤에서 재밌는 얘기 하나.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하니 고된 개운함이란 이런건가 싶더라. 요즘 챙겨보는 신정환의 복귀작 악마의 기능재부를 보면서 잠드려고 누웠다. 보던도중 문득 이번이 몇회차인지 궁금해져 네이버에 '악마의 기능재부'라고 쳤는데 프로그램 정보가 뜨질 않았다. 한 10초간 멍때리다가 생각을 해봤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으니 폐지됐을리는 없고,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오타밖에 없다(자체 코난bgm)는 생각에 '기능재부'를 검색해봤다. 역시. 기능재부가 아니라 재능기부였다.
그리고 바로 밑에 "기능재부같이 순서가 바뀐건데 맞는 말 같은 것좀 알려주세요"라는 흥미로워보이는 지식인 질문이 있어 얼떨결에 눌렀다가 정말 5분동안 숨이 멎도록 웃었다. 개인적으로 수없는 씨박과 중고딘 알라서점에서 심장이 멈출 뻔했고 댓글에 있던 두루고기 돼지치기에서 이성을 잃을 뻔했다.
치자피즈
꽁조림 통치
노인코래방
찍 쭉진해주세요
네훈아 세?
태도의 괴민
번둥천개
껍던씸
노란계른자
알르레기
힘과 꾸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사봉아리
쯔와이스 트위
수없는 씨박
야치참채죽
치킨타올
모자리나
기능재부
허박존각
우뎅오동
메장외모리
중고딘 알라서점
밑장그만,동작빼기냐?
맥걸리와 막주
안재인과 문철수
매를노리는 먹이의 눈빛
난 웃음의 발화점도 굉~~장히 낮은대다 정말 정~~말 지지리도 못참는데 얼마전엔 지하철에서 "친구는 서울대공원이 서울vs공원이라는데 그건 개 병신같은 소리인거 같고"라는 중학생의 글을 보고 사당역에서 인덕원역까지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느라 눈물을 꽤 흘렸다. 인덕원역에서 내려 개찰구까지 올라가면서는 두성으로 폭소했다. 부끄러워...
아 그리고ㅋㅋㅋㅋㅋㅋ갑자기 생각난거 하나 더. 이거는 요즘 내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재무관리 교수님의 드립(젊은 교수님이셔서 평소에도 자주 치시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하시는게 너무 웃기다)인데, 황금연휴가 끝난 직후인 이번주 화요일 수업시간에 애들이 연금의 현가를 구하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을 못하자 "여러분, 연휴 끝나고 나니까 힘드시죠?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가 싶고, 내가 언제 저런걸 배웠었나 싶고... 사실 저도 그래요. 저도 오늘 아침에 딱 눈을 뜨는데 "이거 실화냐?"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구요" 하 그렇게 난 또 꺽꺽대며 눈물을 흘렸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17시마감인 자소서를 하나 썼고, 16시59분에 아슬아슬하게 냈다. 제출 후 받은 수험번호가 12500대였는데 설마 이게 지원자 수를 뜻하는 걸까-_- 그럼 대체 경쟁률이 몇대 몇이야...ㅋㅋㅋㅋㅋ 자소서 문항 중에 "지원자 본인에 대해 자유롭게 소개해주세요"라는 1600바이트짜리 문항이 하나 있었다. 나에겐 가장 까다로운 문항이었는데, 그걸 쓰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올해 여름 N은 "얘기하면서 정리되는게 있어"라는 얘기를 했고 난 얼마전 S와 통화하며 "타인과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평소에 생각치 못했던 논점들에 대해 타의로라도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에게 얘기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잘 정리되기 때문이야"라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전해주었다. 그 문항은 나에게 생각해오던 것과 잠시 묻어두었던 것 모두를 물어보았고, 난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를, 나의 과거와 미래를 정리했다.
그리고 얼마전 아침에 경희대를 산책하며 느꼈던 감정을 떠올렸다: 나와 어울리는 걸 하자. 만약 그대가 "어울리는 것을 찾아간다"가 가지는 3가지의 중의성을 찾는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해본 사람이다. 오늘은 이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한번 정리했다. 어느순간부터 난 이곳에 지나치게 솔직하고, 지나치게 무겁고, 지나치게 개인적인 글을 많이 써왔던 것 같다. monna back이 어떤 의미인지와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장문의 글을 포함해서. 그런 글들을 덜어내 작은 usb에 저장해서 금고에 넣어뒀다. 앞으로는 스무살 스물한살 때,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오던 때, 별다른 근심걱정없던 때의 나처럼 '살짝 뜬' 기분의 글만 남겨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게 나를 속이는 것이 되지 않게도 할 거고. ㅎㅎ
나중에 써야지 나중에 써야지 하고 미뤄뒀던 유튜브 Red 무료체험을 오늘 시작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서도 라이브 영상을 들을 수 있다니 세상에. 이번주 신정환의 기능재부에선 오랜만에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을 들어서 좋았었다. 노인코래방에 가면 항상 부르는 노래이자 너무 힘들었던 올해 겨울에 항상 들었던 2곡 중 한곡. 다른 하나는 Colonel of gambling, lying company라는 인디밴드가 편곡한 sublime의 santeria. 이 두 노래는 아직까지도 반주만 들어도 세탁기 물냄새가 코끝에 생생하고 가슴이 짠해진다.
투투 라이브를 듣는겸 재생목록에 코요태 라이브도 같이 넣어 들었는데 와 신지 풋풋할때 진짜 너무 귀여운거 아닌가. 심쿵했다. 초딩일때 그렇게 좋아할만 했다. 성대결절 전이라 라이브도 장난없다. 난 김종민 같은 성격의 사람도 무조건 호(好)지만 코요태는 신지-차승민-김구였을 때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다. (초딩 ㅈㅇ이가 너무나 좋아했던 코요태와 쿨 얘기는 언젠가 자세히 후술) 김지훈씨는 살아계셨다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회상되는, 불호가 없는 가수였을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전 모르겠어요 형, 항상 아쉬울 때 그만하면 어느정도 맞는 선택이더라구요.
(순정에서 신지 특유의 목소리가 딱 드러나기 시작하는
"다시 생각해봐 내게 이러면 안돼~~")
2017년 10월 11일 수요일
손이 닿는 거리에
언제나처럼 버거킹에서 간단히 아침밥을 사서 나오는데 문득 오랜만에 경희대를 거쳐서 학교에 가고 싶어졌다. 1교시가 시청각건물 수업이기도 했고. 이렇게 가끔씩 새로운 걸 과감히 해야 설레고 들뜬다.
음 전날에 비가 왔던걸로 기억하는데 잔디에 물을 준다. 잔디를 벌크업 시키려나 보다.
그리고 여기는 1학년때부터 몇번이고 캔맥주를 들고 왔던 곳이다. 이런 널찍하고 계단식 광장이 참 좋다. 잊고있던 광운대, 국민대, 교대의 그곳들도 한번씩 기억을 해봤다.
경희대를 빠져나올 때쯤, "이런게" 나랑 어울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난 사람이 없는 곳에선 혼자인게 더 좋다. 내가 쓰는 '혼자'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는다는 의미보단 그 장소에 내가 혼자인 게 좋다는 의미. 맞아. 거짓말을 할 순 없으니까.
요즘은 와인을 마신다. 밖에서 와인을 곁들일 만한 음식을 먹는 일은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니까 생략하고, 그냥 자기 전에 스탠드만 켜놓고 한잔 홀짝하는게 좋다(두잔 홀짝하면 더 좋긴하다). 소주는 너무 쓰고 맥주는 너무 더부룩하고...
복학학기에는 친한 동기 무려 3명이 교내 와인동아리에 같이 들어가자고 꼬드긴 적이 있었다. 술김에 같이 지원서를 냈지만 학점에 미친 복학생이었던 난 다음날 술깨고 바로 취소했었지. 만약 그때 같이 들어갔었으면 지금에서야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아마 점을 이었다며 스티브 잡스를 열렬히 찬양하고 있지 않았을까.
추석때는 견과류에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실컷 몰아봤다. 특히 녹터널 애니멀즈의 잔상은 정말 진했다. 이불 속이 어찌나 아늑하던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이불 이불 하는지 알것 같더라니까. 딱 귀여운 시츄 한마리(알다시피 이름은 로미로 내정)만 있었으면 난 10일내내 집밖에 나가지 않았을거야... 그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2017년 9월 27일 수요일
어둔 방 안에서
때는 23시를 갓 넘겼을 무렵. 회계공부를 좀 더 해야 했는데 하루동안 너무 진도를 못뺐다. 초저녁쯤에 큰맘먹고 청바지를 사러 유니클로에 갔는데 6만원이나 해서 사지 않고 돌아왔던 시간낭비가 컸다. 고민을 했다. 그냥 올스탑하고 지금 바로 자서 첫차를 타고 올라갈까, 조금만 더 하다가 내일 아침은 대충 억지로 일어나서 갈까. 하루를 너무 한심하게 보냈으므로 약간의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그렇게 새벽 4시쯤에 자서 아침에 지옥을 맛보고 겨우 일어나서 올라갔다.
123수업을 마치고 M과 순대국을 간단히 먹은 후 헤어져 벤치에 잠깐 앉아 있으니 피곤함이 쏟아졌다. 카페인에 극도로 취약한 몸이지만 나의 지금은 머뭇하면 정말 끝없이 뒤쳐지는 시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살짝 불안했지만 몬스터에너지를 한캔 사서 마셨다. 재무관리 공부를 하러 도서관1층에 갔는데 컴퓨터석에 자리가 없어 돌아나오는 길에 1년만에 동아리 동기 H를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H는 내가 휴학했을때 코트라 인턴을 다녀왔고(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걸 막을 수가 없었다, 자세한 썰은 언젠가 후술) 지금은 막학기로 원서를 여기저기 쓰는 중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던데. 잘됐으면 좋겠다.
그길로 H와 함께 본관 전산실에 가서 공부했다. 본관 전산실은 처음 가봤는데, 안이 꽤 후덥지근해 에어컨을 틀었다. 이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10분쯤 지나자 재채기에 코막힘에 아주 코가 난리가 났다. 어거지로 3시간쯤 버티고 있자니 코감기기운에 몸살까지 급격히 올라왔다. 여기 계속 있다간 죽겠다는 생각에 시청각1층으로 도망쳐나왔다. 몸상태는 최악이라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까 먹은 몬스터에너지 탓인지 정신은 또렷한 이상한 이중적인 상태가 계속됐다.
약국에서 약을 사서 먹고 죽을 먹으러 가기 전 짐을 싸서 나간다면 밥을 먹고 100% 집으로 가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짐을 일부러 도서관 4층에 풀어놓고 갔다. 예측은 정확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를 20번쯤 되뇌이며 도서관 계단을 다시 올랐다. 18시반~19시에는 몬스터에너지의 효과도 다 떨어졌는지 눈을 감는다면 3분이내에 잠들 수 있으리란 확신이 생기는 상태가 되었지만 근거없는 오기가 생겨 이악물고 버텼다. 30분쯤 버티고 나니 신기하게 훨씬 괜찮아졌다. 오~~랜만에 죄책감 없이 잠들 수 있을만큼 열심히 (노)잼관을 공부하다 22시쯤 나와 방으로 갔다.
다음날 아침. 몬스터에너지의 평 중 '내일 체력을 땡겨쓰는 느낌'이라는 평이 있었는데 상당히 정확한 평이었다.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다 1교시에 가겠다는 전날의 계획은 기억에도 없는 채로 아무도 없는 방에서 8시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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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리해둬야겠다고 마음먹은 부분이 여기다.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부산에 본사를 둔 회사의 면접을 보고 나와, 입구 앞에서 날 기다렸던 친구에게 면접질문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간단했는지를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실컷 털어놓다가, 햇빛이 비춰 불을 켜지 않아도 적당히 환한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 돌아가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는 꿈(정확히 고등학교를 자퇴한 날의 장면과 동일했다)을 꾸다가 퉁퉁 부은 눈을 뜨자 여러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왔다.
1. 안쓰러움
-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일어날 때의 그 기분과, 그것보다 더 무거운 감정으로, '내일도 똑같이 그렇게 일어날 것이라는 걸 아는' 기분, 그리고 난 앞으로 한참동안 그런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때의 기분.
-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느낀건 외로움의 부류는 아닌 것 같다. 동질감의 결여, 가 정확한 표현인듯 싶다.
- 그 모든걸 혼자 이겨냈던 어린 나에 대한 안쓰러움. 과 바보같음. 너무 안쓰러웠다. 죽기전에 타임머신이 개발된다면 이때로 꼭 돌아가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싶다.
2. 안도감(다행)
- 그리고 그 시간들을 이겨내고 조금씩이나마 무엇인가를 이뤄온 지금 내 상태에 대한 안도감. 지금 내 주위에 있는 것들. 그때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것들.
3. 지나침의 덧없음. 있는 것에 만족하며
- 그렇게 아둥바둥대며 살 필요가 있나 싶었다.
-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쉽게 하루만에 바뀐다고 생각치 않는다. 그냥 그동안의 내 방식과의 조화를 찾는 것. 그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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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위한 제언들.
- 자극 줄이기. 잔상
- 상대에 대한 존중. 이 없는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연을 이어나가지 말 것.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는 존중과 선을 갖추어야 할 것. (그리고 여태껏 내가 봐왔듯 그 존중은 대개 '사소한' 일에서 비춰지게 된다)
- 공부는 정말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집밖에서. 그런 의미에서 화요일과 목요일은 21시까지는 학교에 있다가 내려오기.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백번천번 맞는 말이다. 절과 다른 중들이 얼마나 싫든 난 조용히 평온하게 떠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불평이 나오는 순간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다. 위선자가 되는 것을 가장 주의하자. '다른' 사람은 흔하지 않지만 드물게라도 항상 만나게 되니까, 난 그런 좋은 사람들과만 웃으며 관계를 맺고 조용히 어울리면 돼. 나는 나 너는 너.
- 나는 000하는 사람들에게서 0000을 지켜내고 싶다. 과시로 가득찬 세상. 마지막으로 물들고 싶은게 있다면. 절대 따라가지 않겠어. 이상한 가치들에 좀비처럼 몰려드는 그 줄에 절대 끼지 않겠어.
하지만 뭐가 어찌됐든 절대 작아지면 안된다는 것은 더더욱 확실하고 분명한 대전제. 그러니까 나는 가방이 무거울수록 더 가슴을 펴고 걸어야 해.
2017년 9월 5일 화요일
need some sugar
- 첫 회계원리 수업은 대만족. 끝나고는 2시간 정도 김신행 저를 읽다가 서울대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교통편은 역시 최악이다. 노량진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경로였다. 오랜만에 가슴이 시린 감정을 다시 느꼈다. 이유는 이번에도 역시 전혀 모르겠다. 어차피 이곳과 이곳의 사람들에게도 익숙해질 것이고 머지않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부분이 되겠지만 첫 감정만큼은 기록해두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 학과수업 교재비가 없어 그동안 보관해뒀던 수험서 기타 책들 약 15kg정도를 고시촌 중고서점에 가서 팔고 6만 5천원을 받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버리는 일에 익숙해졌다.
- 오자마자 K와 잠깐 통화하고 피곤해 쓰러져 잤다. 너무 피곤했는데도 잠을 많이 설쳤다. 그렇게 또 한번 일찍 일어나 출근길 지옥철에 나가면서 문득,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결국 이런 단조로운 나날들-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자고, 또 일어나 나가고-의 반복이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빠에게 슬쩍 말해보니 그런게 인생이라는 명확하지만 당연한 답이 돌아왔다. 자꾸 정치경제학 수업 때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난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는 절대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 사실이 정답이자 동력이지 않을까 의심한다.
- 이른 점심으로는 S와 구 카빙당 자리에 새로 생긴 스테이크집에 가봤는데 영 별로였다. 스테이크를 잘 못굽는 우리 엄마보다도 더 못했다. 이제 안감. 그리고 9달만에 모르모트형 커피를 마셨다. 장사가 잘 됐는지 이전했더라.
- 정신없이 12 456789를 듣고, 5년만에 L을 만나 P와 함께 셋이서 치킨과 맥주를 간단히 먹었다. 인화원에서 한 강사는 "아닌 사람은 그냥 아닌 것이다"라고 했었는데, 그 말에도 어느정도 공감하지만 내가 더 공감하는 건 "맞는 사람은 그냥 맞는 것"이라는 (내 버전의) 반대해석. L을 처음 봤을 때도, 지금도, L은 그냥 나와 맞는 사람이다.
- 말을 더 잘할 수도 있었고 더 친절할 수도 있었다. 맞다.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피곤하면 사람은 방어적이 되는 법이고, 일련의 일들은 나라는 사람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오늘의 피곤함이 문제라고 여기기로 했다. 두가지 확실한 건 힘들 때 잘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잘하는 것이고, 이상의 이야기와는 전혀 별개로 두번 세번 네번 겸손한 사람이 되자는 것.
- 오는 길은 역시 서서 오느라 진이 다 빠졌다. 8월에는 '통학 그까짓거!' 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지옥이다. 이번주는 정말이지 다녀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져 자고, 다음날 6시반에 일어나 이리저리 낑겨서 1교시에 겨우 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사한 이후로 안산에 있을 때보다 시간은 25분정도 짧아지긴 했는데 앉아서 가지 못한다는게 너무 크다. 안산에서 다닐 때는 끝과 끝이라 오래 걸리긴 해도 제 시간에 일어나기만 하면 앉아서 갈 수 있었고 올 때는 서동탄행이나 신창행을 타면 금정까지 쭉 앉아서 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얄짤없이 서서 가고 서서 와야한다. ㅠㅠ 체력소모가 너무 크다. 이틀간 오가는 길에 연습책을 어떻게든 봤는데 솔직히 공부가 된 건 아닌 것 같다.
- 이것저것 쓰고 싶은 말이 많고 너무 두서없이 쓴 것 같아 조금 수정하고도 싶지만 그것보다는 침대에 파묻혀 자고 싶은 욕구가 크다. 내일도 일찍 나가야하고... 운동을 꼭 좀 하고 싶었는데 아직까지는 집에 도착하면 도저히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체력도 경쟁력이겠지. 멍하다. 어제오늘은 '무엇을 했고 어떻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냐'와는 별개로 최소한 잡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날이었던 것은 확실하니, 오늘은 두 발 뻗고 푹 자야겠다. 자체평점은 생략.
2017년 9월 3일 일요일
17.9.3.일요일의 기록
2017년 7월 10일 월요일
미안해 널 미워해
(난 친구들이 술에 취해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소주 한 잔'과 같은 노래를 "눈을 감고" 내지는 "그윽한 눈빛으로" 부를 때면 정말이지 당장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 왜 눈을 그렇게 뜨는거야 대체....나한테는 너무 가혹한 난이도의 try not to cringe challenge다...ㅠㅠ)
사실 오랜만에 커버를 해봤는데 기타줄이 끊어져서ㅋㅋㅋㅋㅋ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하는걸로. 다음엔 왠지 우쿨렐레로 해보고 싶다.
2017년 7월 2일 일요일
엽기적인 그녀
이런 띵작을 이제야 보다니.ㅠㅠ 놀랍게도 대사가 겹치는게 몇개 있어 부끄러웠다.ㅋㅋㅋㅋ 난 이미 오래전 어느 교양수업에서 '시간여행의 불가능성'이란 주제로 소논문을 쓰고 발표까지 한 적이 있다.
2017년 6월 11일 일요일
we are still innocent
초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 2명이 있었다. 우리는 같이 스타프라자 옥상에서 트램폴린(퐁퐁이라고 불렀다)을 탔고, pc방에서 500원어치 게임을 했고,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를 쳤고, 놀이터 의자에 앉아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재구성했는지, 과연 A day in the life는 비틀즈 최대의 명곡인지 기준은 음악성이냐 대중성이냐 등등에 대해 매일같이 치고박고 싸웠다. 졸업할때쯤 되어 한명은 외국으로 훌쩍 떠났고 한명은 다른 중학교로 배정받은후 이사를 갔다. 그렇게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내 옆에서 사라졌는데, 마지막으로 보던 날 나는 무려 초딩주제에 인연이 있으면 또 보겠지,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나는 14살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사람이 바글바글한 놀이공원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이후로 난 한참동안 혼자 있는걸 편해하고 좋아했었다. 누군가와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는걸 꺼렸다. 그냥 가끔 심심할때 만나서 걷고, 얘기하고, 그정도면 충분했다.
그때 들었던 앨범들이 BSB, Nsync, Westlife같은 90년대 보이밴드와, 켈리 클락슨, 그리고 마이클 잭슨. 신화 7집도 샀었는데 그래서인지 신화 6명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전혀 불호가 없다. 그냥 그형들은 옛날 그대로 재밌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에이브릴 라빈이 커버한 Adia는 내가 중2때 들었던 어쿠스틱 라이브 앨범 Control room에 있다. 오늘은 우연히 반바지를 사러 상설할인매장에 들렀다가 Control room 버전의 스케이터 보이 (브릿지가 지나치게 좋음) 를 들은게 반가워 오랜만에 앨범을 다시 듣다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Adia를 마주쳤다.
15살땐 생각도 못했던 일들을 이제 난 쉽게 할 수 있다. 구글에 Adia chords라고 검색만 하면 언제든 쉽게 기타로 칠 수 있고, 가사를 들으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이젠 D폼으로도 Eb를 잡고, 내 음역대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there ain't no one to buy our innocence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나에게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얼마전 나온 검정치마 3집. 두어곡을 빼면 이젠 내 취향에 맞질 않는다. 기다려왔던 일들은 막상 지나고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크진 않다. 옛날에 누가 술자리에서 '그리운건 그때인가 그대인가'라는 싸이월드에서나 볼법한 말을 한적이 있는데. 오늘의 나는 '그때'가 정답이 확실하다고 말해줄 수 있다. 담배도 사실 담배성분 때문에 피운다기보다는 그냥 나와서 쉬고 바람쐬고 잠깐 생각에 잠기는 그 시간이 좋아서 피우는거 아니야?
지금같은 어느 여름날 행정반에서 상황대기를 하며 후임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난 하루뒤 한달뒤 일년뒤 내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있어. 바로 여기서 짬밥을 먹고 있겠지. 난 예상되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싶어'라고 말했었다. 예측가능성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정말.
딱 한번만 산대잖아? 하고싶은 것들 중엔 안되는 것도 많으니까 난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건 다 하고 살래. 충동이란 단어로 덮어두지 않을거야. 시간을 보낼수록 더 신나고 가슴뛰는 많은걸 할 수 있게 될거고 그렇게 될거야. 그러니까 나이를 들어가는건 즐거운 일이고, 내 뒤로 흘러가는 시간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어.
2017년 1월 31일 화요일
17년 1월의 썰판기
#1. 스타벅스는 분기에 한번씩
가끔 아침에 도서관을 가기 전에 맥도날드에 들러 맥모닝세트를 커피+점심밥용으로 사간다. 오늘은 두뇌에 심한 부하를 줘야할 공부가 예정되어 있어서 당을 미리 좀 충전시켜두고 싶었다. 카페인∧당의 최고봉은 역시 바닐라라떼지만 당연히 맥도날드에서 라떼를 팔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머핀만 단품으로 사서 나왔다. 로널드 맥도날드가 들고 있는 음료는 왠지 진한 검은색일 것만 같았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연건 스타벅스뿐. 이렇게 불가피하게 스타벅스를 가야할 때 가격표를 보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기프티콘을 아껴두지. 과거의 나에 대한 애정이 솟구치는 순간. 보통 분기에 한번쯤 가게 되는데 살짝 이른감이 있지만 오늘이 17년 1/4분기 스벅데이. 작년 생일에 받은 기프티콘을 기분좋게 쓰고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모처럼만에 카톡을 깔아 잘 먹었다는 인사와 인증샷을 보냈다. 카톡을 보면 보고싶은 사람이 너무 많아 마음이 쓸쓸해진다. 그래서 싫어.
점심에 맥모닝을 먹으면서 문득, 설마, 혹시나해서, 맥도날드 바닐라라떼라고 검색해봤는데 있었다.

#2. 생애 최초 F받은 썰
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음.
(기말 레포트 마감날짜를 1주일 뒤로 알았다)
(브금: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3. 불낸 썰
다음 중 잘못된 부분을 고르시오.
주어진 글 다음에 이어질 상황으로 적절한 것은?
㉠방에서 인강을 듣다가 컵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 ㉡커피포트에 물을 받았다. --> ㉢인덕션을 틀어 커피포트를 올려놓고 컵라면을 뜯어 스프를 부어두었다. --> ㉣물이 끓는동안 반찬을 꺼냈다.
반찬을 꺼내던 중 물을 올린지 1분도 안됐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서 뭐지...?하고 뒤돌아봤더니 내가 태어나서 눈으로 본 연기 중 수능시험장 화장실 다음으로 가장 많은 연기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난 한참동안 연기를 빼내면서도 화재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4. 아마겟돈
롯데마트 앞 삼거리에서 집쪽으로 탁 틀으니까 세상에 보름달이 너무 커서 진짜로 아마겟돈인줄 알았다. 사진을 찍어뒀어야 됐는데. 이제부턴 실제상황을 대비해 지갑에 사과나무씨 한개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5. 4500원 치고는 꽤나 부실한 교식
뻑뻑한 불고기, 짠 순두부찌개. 탄수화물과 나트륨을 억지로 밀어넣으며 '나는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생각했다.
#6. 신서유기
취향저격 예능 발견. 아까워서 자기전에 몰래 딱 두개씩만 까먹는중.
이수근은 천재가 분명하다.
#7. 어쩌면+모놀로그
요즘 맨날 듣는 노래. 이 노래를 언제 들었냐면은...으로 시작하는 썰을 술자리에서 푼다면 P가놈들이 듣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게 분명하다.
#8. 스트레스 해소법
매운걸 좋아는 하는데 심각하게 못먹는다.
군대에서 불닭볶음면이라는 신세계를 접한 이후 내게 생긴 취미는 창문을 꽉 닫고,
허언증갤러리를 보면서(처음 이짓을 할때 봤던게 허언증갤러리라 전통을 보전하기로 했다), 눈물 펑펑 흘리면서 유명한 짬뽕집의 시그니처 짬뽕을 완뽕하는것.
딱히 주기는 없고 오늘이다 싶을 때?
매번 짬뽕맛집을 검색하는것도 설레는 일이다.
#9. 징거타코더블
더블다운맥스를 사려다 궁금해서 사봤는데 매워서 죽었다고 한다.
#10. 일회성이 짙은 관계
#11. 17년들어 가장 크게 웃은 동영상
이별은 너와 나의 치킨이야
#12. 광치료
아침에 호수공원 앞에서 햇빛을 가득 받으면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광치료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혹시나 하고 쳐봤더니 그런 말이 진짜로 있더라구. 그래서 요즘엔 커튼도 안치고 알람도 안하고 잔다. 발랄한 영화의 주인공은 꼭 환한 방에서 기지개를 핀다.
2017년 1월 2일 월요일
반오십 첫 잡기

얼마전 로그원 관련된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퀄리티 높은 알투디투 장난감(interactive robotic droid라는듯)을 봤는데 보는순간 반했다. 마음 다 뺏겨버림. 알투가 불후의 띵곡 cantina band에 맞춰 춤을 추는데
아 이럴때 사람들이 심쿵한다고 하는 거구나...
R2-D2와 그로밋이 있다면 난 화성에서도 눌러앉아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화성에 갈 그날이 오기전에 반드시 강아지를 키울 예정인데 이름은 '로미'로 내정되어 있다. (그)로미. 월리스처럼 차려입고 옆에 로미를 앉힌 다음에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을거야.
최근엔 디시위키를 보는 소소한 재미에 빠져있다. 자기전에 랜덤 눌러서 이것저것 보면 아주 재밌는 드립들이 많다. 이불 덮고 아늑하게 낄낄대다 슥 잠이 들때면 이런게 행복인가 싶기도 하고...ㅋㅋㅋ 요즘엔 아는형님을 빼면 한시간정도 넋놓고 웃을 수 있는 예능이 당최 없어서 참 아쉽다. 무한도전은 세물 갔고, 마리텔도 RIP고...옛날에 음악의 신도 진짜 재밌었는데.
엊그제엔 폴라초이스에서 주문한 바하가 도착했는데 효과가 드라마틱하다. 획일화니 몰개성이니 클론이니 뭐니 해도 남들이 좋다는데엔 정말 다 이유가 있는 법인 것 같다. 쇼핑할땐 두번다시 모난돌이 되지 않겠어요.
새해는 지하에서 따뜻하게 맞이했다. 타임스퀘어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찍부터 기가 다 빨렸다고 투덜거렸지만 다음 새해엔 지상에서 불특정다수 속에 섞여 하루만큼은 동질감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C가 연말이니까 로또를 사자고 해 같이 김칫국을 몇잔 나눠마시며 설레발좀 치다가 기대상금액이 복권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불리한 내기에 응했다. 나 미시 불확실성파트 꽤 열심히 공부했었는데...딱 하루만 극단적인 위험선호자가 된 셈 치기로 했다. 2시간의 (상상 속)행복은 만원 정도의 값은 하는 것 같다(고 합리화할래).
세명이서 사진관에 가 사진을 찍었는데 사장님의 사진은 내년에 찾아가라는 언어유희에 감탄했다. 우리들의 원판에 하자가 없잖아 있긴 하지만 보정은 잘 못하시더라고...죄송해요.
폭력배 카메라에게 팩트로 두드려맞고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번에도 또 우리랑 참 연이 깊은 그놈의 닭한마리를 먹는데ㅋㅋㅋㅋㅋ친구 한명이 거의 백종원이 되어서 닭한마리 가이드를 해줘서 너무 웃겼다. 이제 술은 섞어 먹지 말아야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후유증이 너무 크다...-_- 저런 고생 안 사. 하지만 소주? 맥주?하고 물어보면 물론 '당연히 소맥이지'라고 대답할 예정.
그래서 너는 지금 행복해? 살아남는 자가 강한자라고들 하는데 너무 퍽퍽한 말이 아니니. 너는 carry on이니 live니. 지금 내 꿈의 색깔은 최소한 회색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
half to fifty라고 그렇게 놀려대다가 드디어 내가 되어버렸다. 별로 춥지 않은 25살의 첫 새벽, 내가 진짜 이뤄내고 싶은 일. 내가 진짜 원하는 삶. 내가 속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 조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