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5 (일)
청산도 이야기. 딱 내렸는데 엄청 조용했다. 그냥 글자 그대로 새소리밖에 안들렸다. 일단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장어구이를 먹으려 했었는데 1인분은 안된단다. 김치찌개도 안되고 되는건 백반정식밖에 없어서 그걸 먹었다. 먹을건 국하고 김치, 콩나물, 오징어 젓갈뿐이 없었다. 처음으로 음식점에서 굉장히 실망했다. 하튼 그렇게 대충 배를 채우고 나왔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뜬금없이 볼록거울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게 한번 해보고 싶었다. 왜 그런거 있잖아. 아주 옛날에 찍은 사진과 똑같은 장소 똑같은 구도로 아주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찍는거. 이렇게 한 장 남겨두고 언젠가 한번 다시와서 찍어보고 싶다. 똑같이 군청색 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카메라를 왼손에 쥐고. 머리는 아마 락밴드 보컬을 하지 않는이상 다시는 이렇게 기르지 못할 것 같다.ㅋㅋㅋㅋ 내 인생 최고 머리길이를 매일 경신하는 중.
한참 고민하다 결국 오른쪽을 택해서 걸었다. 차가 다닐 수 있게 포장이 된 메인도로를 걷다가 중간에 잠깐 옆으로 빠지는 길로 빠졌다. 돌담길과 초가집이 이뻐보여서. 정~~말 조용하고 정~~말 한적하니 좋았다. 고즈넉하다는 말은 이럴때 쓰는걸까. 난 아직도 사람이 붐비는 곳에 가는게 내키지 않는다.
하얗고 아담한 집. 봄의 왈츠 촬영장이라는데 사실 들어본 적은 없는 드라마다. 여긴 숙박시설도 없는데 그 많은 스탭들은 다 어디서 잤을까.
잠깐의 일탈(?)을 끝내고 다시 메인도로로 올라왔다. 슬슬 오르막이 시작됐다. 날씨도 따뜻한데 오르막을 오르니 땀까지 조금 났다. 언덕 중간쯤에 잠깐 뒤를 돌아보니 때마침 울리는 뱃고동소리 뿌----뿌-----.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크~~. 난 역시 바다가 좋고, 섬이 좋아.
쭉 걷다가 카메라를 세워두기 딱 좋은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한 장 찍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역광을 간과했다. 몰랐는데 내가 발걸음이 꽤나 빠른 것 같다. 계속 걸으니 저~~앞에서 나처럼 메인도로를 걷고 있는 6명의 무리를 발견했다. 혼자 있고 싶은데. 남들 얘기하는건 듣기 싫은데. 앗싸리 늦게 걸어서 시야에 안보이게 보낼까 하다가 배시간을 생각해서 아예 그냥 추월해버리기로 했다. 걸음을 재촉해 추월하려는 찰나 무리 중 한 분이 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사진을 찍어주고, 내 사진도 한 장 부탁할까 고민하다가 뭔가 뻘쭘해서-_-...그냥 갔다.
추월하고 다시 쭉~~ 걸었다. 계속 걷다보니 이제 바다를 벗어나서 섬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이 나왔다. 분위기와 기분이 너무 좋아 더 들어가볼까도 했지만 여기서 더 들어가면 오늘내로 못 나올게 분명하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돌렸다. 여기까지 오는데만도 2시간이 걸렸다. 원래는 걸어서 한 바퀴를 돌 예정이었는데 그건 미친 생각이었다. 다시 돌아갈때는 아쉬워서 뒤로 걸으며 내가 갈 수도 있었던 저 앞쪽을 마지막까지 쳐다봤다. 언젠가 차를 끌고 다시 올거야. 그때는 꼭 한바퀴를 돌아야지.
돌아오는 길엔 길 옆으로 보이는 섬의 바깥 풍경을 많이 찍었다. 아까 사진을 찍어드렸던 분들을 다시 만나 어색한 눈인사를 하고 총총걸음으로 빠르게 지나쳤다. 혼자걷고 싶다고!! 돌아가는 배편을 놓칠까봐 너무 무식하게 걸었더니 다리가 아파 중간에 있는 화랑포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어차피 사람도 없는거 그냥 벤치에 아예 퍼질러 누웠다.ㅋㅋㅋㅋ 신발을 벗으면서 보니 2년동안 신은 뉴발란스 운동화가 드디어 수명을 다해간다. 집에 돌아가면 오랜만에 새 신발을 사고 훨훨 날아올라야지.
화랑포공원에서 올라가는데 선착장 반대쪽으로 길이 하나 나있었다. 바다 근처까지 내가 내려갈 수 있는 것 같아서 충동적으로 쭉 내려갔다. 아까 메인도로가 깨끗한 푸른색이었다면 여기는 초록색같은 느낌? 돌변가(?)를 한참 거닐다가 근처 정자에 앉아있으니까 멍멍이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왔다. 나같은 타지인을 이렇게 좋아해주다니!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듯? 설마 진돗개의 '진도'가 여기인가? 그렇게 청산도 멍멍이랑 한참 노닥거리고 있으니 멍멍이 주인 할아버지께서 오셨다. "강아지 너무 귀여워요~~"하니 허허 웃으셨다.
그렇게 날 한참동안 따라오는 멍멍이를 뒤로 하고(진짜 너무 많이 따라와서 데려가야하나...하는 고민까지 했었다. 진지하게.ㅋㅋㅋㅋ) 허겁지겁 뛰어가 마지막 배편을 무사히 탑승했다. 너무 예뻤던 청산도. 잘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