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8일 수요일

남도여행 (7)


2010.12.7 (화)






그렇게 밤늦게 내려 근처(라기엔 꽤 먼 곳)에서 묵었다. 푹쉬고 느긋하게 나와 다시 터미널쪽으로 걸어가면서 밥을 먹으려는데 음식점 찾기가 무쟈게 힘들었다. 도중에 엄마한테 곧 돌아가겠다는 문자나 한 통 남길까 해서 가방 깊숙히 꺼두었던 핸드폰을 다시 켰는데 정말 구라안치고 G한테 전화가 딱!!! 와서 전화를 하면서 요리저리 걷다보니 월출산 쪽으로 상당히 깊게 들어갔다. 근처에 절하고 탑이 있었는데 너무 시원하고 경치도 좋고 해서 한 20분쯤 구경하다 왔다. 다음엔 다시 또 한~~참을 걸어서 갈비집에 갔다. 가난한 학생이라(^^) 돼지갈비 2인분에 물냉 하나를 곁들여 먹었다. 사실 이제 더 돈 쓰고 싶어도 못쓰니까 허리띠풀고 미친척하고 먹었다.ㅋㅋㅋㅋㅋ KTX도 포기했는데 이정도 사치야 부려도 되겠지!!




밥 쳐묵쵸묵하고 터미널가서 버스 시간 전까지 한숨 잤다. 안산직행은 당연히 없었고, 부천가는건 있어서 부천으로 갔다. 월출산은 올해 수능끝나고 올 수 있게 남겨두었다. 아 물론 당연히 핑계고. 이 버스에서 내린 다음 부천에서 있을 소소한 일들은 다음 기회에 언젠가 에필로그로 붙여두고 싶다. 그래. 이렇게 두서없이 시작된 겨울 남도여행은 정처없이 떠돌다 이렇게 끝났다. 다음엔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내가 정말 꿈꾸던 그런 걸로 해봤으면 좋겠다. 이 추억은 재수하면서 숨막힐때마다 가끔 펼쳐보면서 실실 쪼개주자. 그래야 나답지. ^-^



2010년 12월 7일 화요일

남도여행 (6)


2010.12.6 (월)




지금은? 아침(?) 10시40분. 명사십리해수욕장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 해수욕장에 안어울릴듯 어울리는 소나무 한 그루가 여행기를 쓰는 날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해가 뜨니까 훨씬 따뜻하다. 사실 여기는 저녁에도 그렇게 춥지 않다. 역시 아래지방이 살기가 좋은 것 같다. 언젠가 가정을 꾸리게 되면 북위 36도 이남이 고향인 친구를 만나 따뜻한 아래쪽에 연고를 두고 싶다.ㅋㅋㅋㅋ

알아보니 원래 계획했던 고금도루트보다 왔던길로 되돌아가는 루트(완도 --> 목포)가 훨씬 빨라서(하루를 단축할만큼) 그길로 가기로 했다. 단 목포에서 KTX를 타는 대신 영암군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올라갈 예정이다. 먹는거에 돈을 아끼지 않았더니 돈이 부족해서 KTX를 못탄다. 영암에는 월출산이라는 괜찮은 산이 있다는데 갈 지는 아직 미지수다. 어제 저녁밥을 먹은 횟집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어제는 전복삼겹살을 먹었는데 뭐 특별한 건줄 알았더니 전복 2개에 삼겹살이었다. 이틀동안 꽤 피곤했었나 보다. 7시에 깨서 바닷가를 좀 걷다가 다시 돌아와서 10시까지 늦잠을 잤다.


(아침 7시, 아무도 없는 겨울의 바닷가)


문제는 씻을 때였다. 따뜻한 물이 계속 나오다가 갑자기 물이 차가워졌다. 찬물이 너무 싫어서 그냥 머리만 물로 감고 몸은 완도터미널 옆에 있던 사우나에서 씻기로 했다. 이렇게 추운게 싫어서야 군대나 갈 수 있을런지. 씻고 나와 환한 해수욕장을 걸었다.



이야~ 난 정말 운이 좋다. 딱 완도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기사분께서 땅을 쳐다보며 걷는 나를 지나치며 빵빵---하셨고 버스랑 거리가 꽤 거리가 있었는데 기다려 주셨다. 버스에 올라타며 애정이 듬뿍 담긴 눈인사를 해드렸는데 생각해보니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군... 어제 버스에서 내렸던 곳이 꽤 멀어서 조금 걱정했었는데(게다가 이런 작은 마을에 이런 버스가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어제 밤늦게 민박집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채로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명사십리 해수욕장까지 걸어갈때는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가로등도 없고 차도 없고....불빛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나쁜일 당하면 정말 쥐도새도 모르게 가겠구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완전 온몸에 긴장하고 걷다가 고양이를 마주쳐서 심장마비 걸릴뻔했다.ㅋㅋㅋ








지금은 영암가는 버스 안. 완도에 돌아와서는 최경주공원에 들렀다. 주변에 공원이 잘 되어 있어서 해가 질 때까지 걸어다녔다. 공책을 찢어

free world
full of beauty
today I swim
better by myself

라는 글귀를 적어 완도타워 꼭대기 구석에 몰래 끼워넣고 왔다. 완도는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다. 이렇게 대책없이 떠났는데도 이렇게 맘에 쏙 드는 곳을 만나다니. 어렴풋한 느낌이 온다. 이곳에 다시 오는건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난 후가 될 거라는게.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 옆엔 누가 있을까. 지금 가지지 못한 것들을 그때는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다. 터미널까지 걸어가면서는 갑자기 터보의 회상("보이지 않니~") 멜로디가 맴돌아 한참을 부르며 노을지는 바닷가를 마지막으로 감상했다. 도중에 한번 잠깐 이유없이 울컥했지만 금새 참아냈다. 난 이정도로 값싼 눈물 흘리지 않는다고.ㅋㅋㅋㅋ 피곤하지만 잠을 잘 수가 없다. 종착역이 광주라서 잠들어버리면 완전 동선이 꼬인다. 잘 깨어있다가 영암에서 내려야된다. 오른쪽엔 장도(청해진 유적지)가 보인다. 딱 봐도 잘 꾸며놓았다. 완도에 도착한 날에 여길 걸어서 가려고 했었다니. 진짜 거리개념이 없는 멍청이였다.


2010년 12월 6일 월요일

남도여행 (5)


2010.12.5 (일)


청산도 이야기. 딱 내렸는데 엄청 조용했다. 그냥 글자 그대로 새소리밖에 안들렸다. 일단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장어구이를 먹으려 했었는데 1인분은 안된단다. 김치찌개도 안되고 되는건 백반정식밖에 없어서 그걸 먹었다. 먹을건 국하고 김치, 콩나물, 오징어 젓갈뿐이 없었다. 처음으로 음식점에서 굉장히 실망했다. 하튼 그렇게 대충 배를 채우고 나왔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뜬금없이 볼록거울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게 한번 해보고 싶었다. 왜 그런거 있잖아. 아주 옛날에 찍은 사진과 똑같은 장소 똑같은 구도로 아주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찍는거. 이렇게 한 장 남겨두고 언젠가 한번 다시와서 찍어보고 싶다. 똑같이 군청색 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카메라를 왼손에 쥐고. 머리는 아마 락밴드 보컬을 하지 않는이상 다시는 이렇게 기르지 못할 것 같다.ㅋㅋㅋㅋ 내 인생 최고 머리길이를 매일 경신하는 중.



한참 고민하다 결국 오른쪽을 택해서 걸었다. 차가 다닐 수 있게 포장이 된 메인도로를 걷다가 중간에 잠깐 옆으로 빠지는 길로  빠졌다. 돌담길과 초가집이 이뻐보여서. 정~~말 조용하고 정~~말 한적하니 좋았다. 고즈넉하다는 말은 이럴때 쓰는걸까. 난 아직도 사람이 붐비는 곳에 가는게 내키지 않는다.



하얗고 아담한 집. 봄의 왈츠 촬영장이라는데 사실 들어본 적은 없는 드라마다. 여긴 숙박시설도 없는데 그 많은 스탭들은 다 어디서 잤을까.



잠깐의 일탈(?)을 끝내고 다시 메인도로로 올라왔다. 슬슬 오르막이 시작됐다. 날씨도 따뜻한데 오르막을 오르니 땀까지 조금 났다. 언덕 중간쯤에 잠깐 뒤를 돌아보니 때마침 울리는 뱃고동소리 뿌----뿌-----.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크~~.  난 역시 바다가 좋고, 섬이 좋아.




쭉 걷다가 카메라를 세워두기 딱 좋은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한 장 찍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역광을 간과했다. 몰랐는데 내가 발걸음이 꽤나 빠른 것 같다. 계속 걸으니 저~~앞에서 나처럼 메인도로를 걷고 있는 6명의 무리를 발견했다. 혼자 있고 싶은데. 남들 얘기하는건 듣기 싫은데. 앗싸리 늦게 걸어서 시야에 안보이게 보낼까 하다가 배시간을 생각해서 아예 그냥 추월해버리기로 했다. 걸음을 재촉해 추월하려는 찰나 무리 중 한 분이 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사진을 찍어주고, 내 사진도 한 장 부탁할까 고민하다가 뭔가 뻘쭘해서-_-...그냥 갔다.





추월하고 다시 쭉~~ 걸었다. 계속 걷다보니 이제 바다를 벗어나서 섬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이 나왔다. 분위기와 기분이 너무 좋아 더 들어가볼까도 했지만 여기서 더 들어가면 오늘내로 못 나올게 분명하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돌렸다. 여기까지 오는데만도 2시간이 걸렸다. 원래는 걸어서 한 바퀴를 돌 예정이었는데 그건 미친 생각이었다. 다시 돌아갈때는 아쉬워서 뒤로 걸으며 내가 갈 수도 있었던 저 앞쪽을 마지막까지 쳐다봤다. 언젠가 차를 끌고 다시 올거야. 그때는 꼭 한바퀴를 돌아야지.







돌아오는 길엔 길 옆으로 보이는 섬의 바깥 풍경을 많이 찍었다. 아까 사진을 찍어드렸던 분들을 다시 만나 어색한 눈인사를 하고 총총걸음으로 빠르게 지나쳤다. 혼자걷고 싶다고!! 돌아가는 배편을 놓칠까봐 너무 무식하게 걸었더니 다리가 아파 중간에 있는 화랑포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어차피 사람도 없는거 그냥 벤치에 아예 퍼질러 누웠다.ㅋㅋㅋㅋ 신발을 벗으면서 보니 2년동안 신은 뉴발란스 운동화가 드디어 수명을 다해간다. 집에 돌아가면 오랜만에 새 신발을 사고 훨훨 날아올라야지.








화랑포공원에서 올라가는데 선착장 반대쪽으로 길이 하나 나있었다. 바다 근처까지 내가 내려갈 수 있는 것 같아서 충동적으로 쭉 내려갔다. 아까 메인도로가 깨끗한 푸른색이었다면 여기는 초록색같은 느낌? 돌변가(?)를 한참 거닐다가 근처 정자에 앉아있으니까 멍멍이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왔다. 나같은 타지인을 이렇게 좋아해주다니!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듯? 설마 진돗개의 '진도'가 여기인가? 그렇게 청산도 멍멍이랑 한참 노닥거리고 있으니 멍멍이 주인 할아버지께서 오셨다. "강아지 너무 귀여워요~~"하니 허허 웃으셨다.



그렇게 날 한참동안 따라오는 멍멍이를 뒤로 하고(진짜 너무 많이 따라와서 데려가야하나...하는 고민까지 했었다. 진지하게.ㅋㅋㅋㅋ) 허겁지겁 뛰어가 마지막 배편을 무사히 탑승했다. 너무 예뻤던 청산도. 잘 있어라!



남도여행 (4)


2010.12.5 (일)


5시40분쯤에 나왔는데, 우려했던대로 시간이 어정쩡했다. 일단 근처 편의점에서 밴드, 왁스, 장갑을 사면서 112번 정류장의 위치를 확인했다. 첫차가 5시50분에 출발한다지만 반대쪽 종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꽤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래도 할게 없으니 버스정류장에서 한 20분정도 기다렸다. 정말 징하게 안왔다. 그래서 그냥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갔더니 3분만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2700원이 나왔는데 택시기사분께서 2700만원이라고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드립을 치셨다. 역안에서 표를 끊고 그 옆 식당에서 육개장을 한그릇 먹었다. 이러다 멀미하는거 아닌지 몰라. 이렇게 차 기다리는 시간이 은근히 빨리간다는걸 다시 느낀다. 55분찬데 벌써 46분이다. 슬슬 나가서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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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행 버스에 탔다. 버스안은 무지하게 춥다. 좀 있으면 나아지겠지. 지금은 이걸 쓰는 것보다 드라이브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창밖을 좀 멍하니 봐야겠다. 여긴 KTX처럼 논밭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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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구경은 무슨. 도착한 줄도 모르고 푹 잤다. 역에서 지도를 샀는데 전국지도를 완도지도로 속여파는 매점주인에게 당했다. 나와서 역시 또 쭉 걸었다. 해양공원에서 바다를 옆에 끼고 걸어 완도항까지 갔다. 여기서 본 남해바다는 서해보다 훨씬 색깔이 고왔다. 햇볓때문에 앞을 못 볼 정도여서 시내로 조금 걸어가 선글라스를 샀다. 안경점 주인분께서 참 친절하셨다.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조금 하자 힘든길 걸어가고 있다고 멋있다고 막 그러셔서 좀 부끄러웠다. 공짜커피를 얻어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와 완도항에서 청산도 가는 배를 탔고 지금 막 출발했다. 나가서 사진 찍어야지!


(갑판 꼭대기에는 역시 여느 배처럼 갈매기들이 한가득. 
갈매기는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들고있는 새우깡이 좋아서 온거겠지. 
나는 네가 정말 좋다고 아무리 말해봤자 난 새우깡을 이길 수 없을 거야.)


3층에서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대부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었고 간혹 나처럼 여행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확실히 목포가 태풍주의보였던게 맞는 모양이다. 여기 선상에서 쐬는 바람세기가 목포의 1/3도 안된다. 문제는 지금 배가 고프다. ㅠㅠ 얼핏듣기로는 50분쯤 걸린다는데...속도 좀 울렁거리는거 같고...올때는 여기서 누워서 잘 지도 모르겠다.


워메 좀 누워있으려니까 거의 다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위에서 사진이나 좀 더 찍다가 내려야겠다. 아~ 오늘은 민박집에서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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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산도에서 다시 완도로 가는 배 안인데, 일기고 뭐고 좀 쉬어야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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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날 뻔했다. 부끄럽지만 너무 노곤해서 양말까지 다 벗고 완전 내집 안방처럼 편하게 선실에 누워있었는데(보일러도 되어있어서 따뜻하기까지 했다) 그냥 그 상태로 잠들어버렸다. 눈을 딱 뜨니까 방안엔 아무도 없었다. '혹시 정신줄 놓고 자서 3시간쯤 자버린거 아니야? 그럼 여기 혹시 다시 청산도? 거기는 막배가 5시40분이던데....'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어 짐을 허겁지겁 챙겨서 뛰어내려갔다. 차들이 내리고 있었다. 혹...혹시? 우려와는 다르게 완도였다. 내려서 잠 좀 깨면서 생각해보니 선글라스 끼고 잔게 무지하게 잘 한 일이었다. 맨발로 자다니. 완전 진상이었다.ㅋㅋㅋㅋㅋ 지금은 명사십리로 가는 버스안인데 흔들려서 쓰기가 좀 불편하다. 청산도 얘기는 민박집에서 써야겠다.







2010년 12월 5일 일요일

남도여행 (3)


2010.12.4 (토)


워메...무지하게 일찍 일어났다. 21시에 자서 2시에 일어났다. 7시55분까지 버스터미널로 가야되고 거기까지 가는 112번 버스는 5시50분에 첫차랜다. 방금 컴퓨터로 알아봤다. 지갑에 있던 500원짜리로 시작했는데 키보드 'ㅈ' 'ㅁ'이 안쳐졌다. 그래서 옆에서 하려고 천원짜리를 바꾸러갔는데 동전교환기가 고장나있었다. 물론 매점은 닫혀있었고. 그래도 내가 누구냐.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15분 남짓에 필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지금은 배깔고 누워서 이걸 쓰고 있다. 저 멀리서 어떤 아저씨께서 코를 고는데, 소리만 들어봐도 '아 이것이 무호흡증이구나' 할 정도이다.




잠을 자기도, 안자기도 애매한 시간이다. 난 한번 잠깨면 웬만해서는 다시 잠 못잔다. 그냥 찜질방에 누워있다가 이따 버스에서 자야지. 어제는 어디까지 썼더라. 아, 택시타기 전까지 썼지. 목포해양대학 근처에서 택시를 잡고 유달산으로 향했다. 본토 전라도 사투리는 굉장히 빠르고 '뭐시기' 등의 생략이 많아 알아듣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들을 수 있었던(해석할 수 있었던) 말은 "태풍주의보...뭐시기 해서.....~~하면 된당께" 정도. 왜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나 했더니 태풍주의보였구나.ㅋㅋㅋㅋ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해주셨지만 잘 알아듣지는 못해 죄송했다. "날씨도 춥고 시간도 늦었응께(이때시간 오후4시) 일등바위까지는 가지말고 대충 그 전에 내려오라"고 하시며 산 중턱에서 내려주셨다. 일단 그 때 너무 배고팠기 때문에 근처 식당에서 낙지비빔밥을 먹었다. 같이 나온 된장찌개에 꽃게와 큼지막한 감자 3개가 있던 것이 기억난다. 진짜 맛있었다. 배불리 먹고 나와 유달산을 중턱쯤까지 올라갔다왔다. 그 위에서는 목포가 한눈에 들어왔는데 경치가 볼만했다.


 (우리집 뒷산 이름도 노적봉인데. 반가웠다. ㅎㅎ)



 (어린이 헌정탑에 꼭 저런 자세를 취해야 했을까)


(여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조금 과장해서 이러다 날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람이 불긴 했지만 노을이 살짝 지니 얼마나 예쁘던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씩 웃으며 똥폼을 잡아보았다.)



내려오는 길엔 귀마개를 샀다. 옆머리 휘날리는 것도 막아주고 엄청 따뜻했다. 그렇게 유달산을 갔다가 평화광장을 가려고 택시를 잡았다. 택시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고갯길을 최대한 내려가서 탔다. 이번 택시기사분도 생략이 심하셔서 잘 알아듣지는 못했다. 나는 갓바위직전에 있는 자연사박물관 쪽에서 내렸다. 지도에 나와있어서 잠깐 들러보고 싶어 가봤지만 박물관과 문화예술관 모두 폐장했다(이때시간 오후6시). 그치만 그 앞에 있던 공원이 괜찮아서 좀 걸었다. 그렇게 갓바위 가는 길까지 계속 걸었다. 중간쯤에 한번 다리가 너무 아파와서 앉아서 5분쯤 쉬었다. 다리는 아팠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냥 헬스하다가 쉴 때의 그 느낌? 그렇게 계~속 걸었고 주변은 계~속 바다였다.



(초딩때 즐겨했던 포켓몬 게임이 생각나는 다리였다. 
야생의 잉어킹이 나타나길 기대했는데!)


갓바위는 별거 없었다. 난 오히려 다리에서 불빛 바뀌는게 더 이뻤다. 저녁이라 그랬나? 평화광장 길은 정말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길었는데, 막상 걸어보니까 의외로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게 마라톤하는 사람들의 마음일까? 평화광장길을 계속 걷다가 발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해서 공원을 건너 국밥집에서 밥을 먹으며 좀 쉬었다. 밥을 먹고 따뜻해진 몸으로 60년대 히피의 표정과 발걸음으로 평화광장을 실컷 흐물흐물 거닐다가 지도에 있는 찜질방을 찾아갔다. 자 이게 1일차의 일정이었다. 지금 시각은 새벽4시10분. 수면실에서 좀 누워있다가 씻고 내려가야겠다. 오늘은 버스에서도 잘 예정이니까 완도 민박집에서 일기를 쓰게 될 것 같다. 항상 일정이 있는 전날에는 다음날 내가 어떻게 될지, 어디로 가있을지 궁금했었다. 이제 좀 누우러 가봐야지.













2010년 12월 4일 토요일

남도여행 (2)


2010.12.3 (금)


지루할 것 같던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은 20시30분, 장소는 찜질방이다. 어우... 오늘 정말 징하게 걸어다녔다. 노량진에서 H와 한강 걸은 이래로 이렇게 많이 걸어본 적은 처음이다. 지금 걱정되는건 디카다. 매점주인분께 콘센트 남는게 있으시냐고 여쭤봤지만 없으시댄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봤더니 런닝머신 쪽에 남는 콘센트가 있길래 거기다 꽂아두고 따뜻한 찜질방에 배깔고 누워 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나가야겠다. 힘들게 씻었는데 괜히 또 땀낼 필요는 없지.


자 다시 처음으로. 목포역에서 내린 후 역내에 있던 안내소에서 지도를 얻었다. 대반동 해변길을 가려고 목포항 쪽으로 내려가는데 길이 꽤나 복잡했다. 그냥 시골길이라 큰 건물이 없어서 찾기가 힘들었다. 가는 길에 어떤 산책하시는 노부부께 길을 물었다. 아주머니는 내 팔을 붙잡으면서 친절히 설명해주셨고 자기가 하는 집이라며 음식점 명함도 한 장 주셨다. 물론 가지는 않았다. 목포항에서 처음 바다를 봤는데, 내가 여태까지 본 바다들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바다였다. 목포항은 항구의 로망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멋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너무 시퍼래서 슬픈 겨울 하늘.





진짜 바람이 무지하게 불었다. 바람쐬러 왔는데 말 그대로 바람만 쐬고 있었다. 뭐 기분이 나쁘거나 한 건 아니었고. 머리는 이제 그냥 바람이 어디서 부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졌다. 바다사진은 몇 장 찍었지만 내 사진은 거의 못찍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카메라를 세워둘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중간쯤에 산책하시는 할아버지께 사진을 부탁드렸지만 타이머 끄는걸 깜빡하는 바람에 멋지게 작살났다. 게다가 그 할아버지는 처음에 카메라를 거꾸로 들고 계시기도 했다. "이거 어디로 찍는것이여?"ㅋㅋㅋㅋ





하튼 그렇게 엄청난 맞바람을 맞으며 끝없는 해변길을 주구장창 걸었다. 걸으면서 "내가 왜 걷지?"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들었다. 왜냐면 노량진에서 '그냥 걷기'를 보고 나도 '그냥 걷는 여행'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르고, 죽지 못해 살고, 나는 차가 없어서 걷는다. 계속 걸으면서 사진 찍고...쉬고....그러기를 반복했다.




슬슬 배가 고파서 유달해수욕장에 있던 음식점에서 갈치조림을 먹으려고 들어갔는데 전기밥솥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고 아무도 없었다. 구조도 좀 이상했다. 그냥 나와서 이번엔 그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물이나 사려고 했더니 문이 잠겨 있었다. 사실 폐장된 해수욕장 옆자리가 무슨 장사가 될까. 어디 놀러갔겠지. 그렇게 앞으로 쭉 가니 목포해양대학이 나왔다. 바다에 초근접해있었다. 야...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는 태풍오면 수업은 커녕 등교도 못할 것 같다. 오늘 너무 징하게 걸었더니 21시를 조금 넘긴 이 시간에도 벌써 졸려온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마저 써야지.



(유달해수욕장에서. 카메라는 세워둘 수 있었지만 역광이란 점을 깜빡했다.)

남도여행 (1)


2010.12.3 (금)


광명역까지 가는 길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매표소로 걸어가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대사 '가장 빨리 가장 멀리 가는 표로 주세요'를 성공적으로 읊었다. 목포였다. 광주행 KTX 10시35분 차를 타고 출발했다. 문제는 내가 창가쪽인데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그 자리에서 주무시고 계신다는 점이다. 그냥 말안하고 가련다. 이 기차가 목포직행이었으면 따질 법도 했지만 3~40분이면 가는 서대전에서 환승할건데 굳이 그럴 필요를 못느끼겠다.



여행? 여행이라고 딱히 기분이 달라지거나 그런 건 없다. 난 수능을 볼 때도 딱히 긴장되거나 떨리지 않았다. 이번 여행도 어제 새벽 1시부터 2시 30분까지 1시간 반만에 스케줄을 짰다. 큰 그림만 그려놨지 자세한 것도 없다. 사실 다 짜놓고 가면 뭐가 재밌을까. 작년에 잠시 들른 호주에서도 난 그냥 발가는대로 (정확히 말하자면 tram 가는대로) 돌아다녔고, 상당히 만족했었다.



두서없이 사는 것. 난 요즘 그렇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내 삶의 표어는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둥글둥글하게 살어야지. 하튼 이제 수능도 끝나고 했으니 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보자. 이번 여행에서는 실실 쪼개고 다녀야지.



어제 내가 잔 시간은? 오후 1시~오후 6시, 새벽 3시~아침 8시. 절대량만 따지면 충분히 잔 것 같지만 사람의 생체리듬이란게 무지하게 중요하단 사실을 노량진에 있을 때 뼈저리게 느꼈지. 그래도 그 때 아침 7시 쯤에 아침밥 먹고와서 시원한 바닐라라떼 한잔을 홀짝이며 컴퓨터로 IT crowd 틀어놓고 취침예약 20분 때리고 점점 잠들어가는 걸 느끼면서 잘 때는 무지하게 행복했다 ^__^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내가 지금 슬슬 졸려온다. 팔도 좀 아프고. 신문이랑 책 좀 보면서 서대전까지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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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전역에서의 20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머리길이 상당히 어정쩡해서 만지기 힘들었는데 강풍을 한 5분쯤 쐬니까 그마저도 엉망이 되어버렸다. 상관없다. 지금 기분이 상당히 괜찮다. 역시 사람은 바람을 좀 쐬야 되는가 보다. 항상 보던 곳, 항상 가는 곳만 다녀서 좀 지루했었는데. 이번 여행은 잘 온 것 같다. 하긴 돈들여 여행가면서 '괜히 왔어'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멍청한건가?


기차 안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 안산에서 타던 버스나 전철과 딱히 다른 건 없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좌석이 좀 편안하고 가는 곳이 종착역이라 마음놓고 잘 수 있다는 점? 안산에서 노량진 갈 때는 용산역, 심지어는 서울역까지 가본 적도 있다. 그 때 오고가는게 좀 힘들기는 했어도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집에서 편하게 지냈던 10월은 별로 기억에 안 남는거랑 같은 맥락인가? 따뜻하니까 슬슬 또다시 잠이 밀려온다. 어차피 목포가 종착역이니까 잠을 좀 자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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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았지만 금방 깼다. 예전부터 궁금했었는데, 잠이 안와도 눈을 감고 있으면 피로가 풀리는걸까? 아닌 것 같다. 그건 그냥 잠을 못자는 것에 대한 정신적인 자기만족이겠지.


창 밖은 광명이나 여기나 계~속 논밭이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느낀건데, 이런 풍경은 아무리 봐봤자 머릿속에 남지가 않는다. 지금은 익산역이다. 방금 내린 내 옆자리에 있던 학생은 전화해서 담임욕을 맛깔나게 하던데 힘들게 임용고시 패스해서 어린 학생들에게 뒷담화나 까이는 얼굴모를 그 분이 참 안쓰러웠다. 어쩌면 난 위선자일지도 모른다. 나도 학교다닐 때는 이런욕 저런욕 다 했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냐. 한 해 한 해 살아가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거지. 목포까진 아직도 한시간이나 남았다. 좀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