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늘 업무를 끝낸 퇴근 30분전.
창밖엔 비같은 눈이 내린다. 차라리 운치있게 비나 주룩주룩 왔으면 좋겠다. 올거면 펑펑 오던가.내가 군인일땐 하루도 안빼놓고 오던 눈이...
시간은 내 전역 전 마지막 매복작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은 매복전 취침을 끝내고 밖으로 딱 나오는데 어두워서 깜짝 놀랬을만큼 날씨가 우중충했다. 결국 위병소를 출발하자마자 비가 쏟아지고 엄청난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 바로 옆사람하고 대화가 안될 정도로.
그런 상태에서 계속 멀어저가는 뒤를 돌아보는데 기분이 너무... 뭐랄까. 한단어로 말하기가 애매한데 가장 비슷한 단어를 꼽자면 '후련'했다. (팀원들은 표정이 무척 어두웠지만) 비는 이미 쫄딱 맞고 있었지만 상쾌하고, 시원하고, 소리지르고 싶고... 그런 느낌.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내가 눈으로 보던 장면은 머릿속에 사진처럼 현상되어 있다.
그날 작전 이후 복귀해서 일기장에 <전역 후 꼭 해야 할 일 리스트>에
'비가 시끄럽게 오는 날 우비를 입고 방수 되는 카메라 하나 들고 한강 옆을 쏘다니기'
를 추가했다.
뭐 그 다음은 다들 겪는 일들, 누구나 똑같은 얘기. 아직까지도 그 계획은 미실시로 남아있다. 항상 비가 올 때면 슬램덩크 강백호의 명대사(저는 바로 지금입니다)를 읊으며 오늘이 그날인가? 하곤 했지만. 적어도 고민하며 설레긴 했었다.
결론 1. 뜨거운 심장이고 청춘이고 나발이고 겨울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