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학생예비군. 사실 일주일 전부터 빨리 갔으면 했다. 어차피 피하지 못할 시간이니까 하루정도 부담없이 idle time을 가지고 싶었다. 수없이 말했지만 난 정말 몸이 편한 것보단 마음이 편한 게 낫다. 같이 간 친구에게 어서 예비군 훈련을 받고 싶었다는 얘기를 하자 놀랍게도 굉장히 공감했다. 평소에 하는 생각, 가끔씩 꽉 막힐때면 차라리 상병때쯤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도 했는데 한술 더 떠서 자기는 일병때도 괜찮다고. 한참 웃었다.
방학 때 오는 예비군은 일장일단이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인원이 적다는 점. 재작년 학기중에 왔을 때는 동대문구와 성북구의 모든 학교가 다 왔던 걸로 기억한다. 전날 4시반에야 겨우 잠이 든 관계로 위병소를 거의 꼴찌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꼼짝없이 스탠드에 한시간은 앉아 있겠구나 체념하고 있는데 웬걸 인원이 적어서 금방 조편성을 받았다.
반대로 단점이 있다면 여름이라 미치도록 덥다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리다 딱 예비군날이 되자 거짓말같이 쨍쨍해진 날씨. 오전인데도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였지만 이른 시간에 햇빛을 받으며 한적한 교장을 걸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하던지. '기분 전환'은 이럴 때 하는 말인게 분명했다.
훈련을 받으면서는 같은 조원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그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난 내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내 행복을 이루는 구성요소는 무엇일지에 대해서. '저 사람은 그런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구나. 그럼 나는 언제 행복을 느낄까?' 하는 생각들.
20을 얻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0에서 20을 얻는 방법도 있고, 1000을 잃고 1020을 얻는 방법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해도 결과는 동일하다. 1000을 잃고 1020을 얻어야만, 많은 일·특별한 일·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일을 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0에서 20으로, 내 방식대로 조금씩 차근차근 행복을 쌓아가는 것도 똑같은 행복인 것이다.
평생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것 같아 아쉬운 훈련장길을 걸어 내려오며 다짐했다. 지금부터는 내 몸에 맞는 옷을 찾아가겠다고. 맞지 않는 옷은 누가 뭐라해도 입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