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7일 수요일

어둔 방 안에서

오늘만큼은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 지금은 새벽 1시. 잠깐 나가 캔맥주 한 캔을 사왔다. 퇴근시간에 낑겨 1분도 앉지 못하고 한시간 반을 꼬박 서서 집에 왔고, 밥을 먹고 운동가기 전 소화를 시킨다는 명분으로 침대에 잠깐 누워있다 그대로 잠이 들어 방금 깼다. 많은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의 (급박한) 현재 상황을 보여주다 '00 hours ago..'를 띄우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곤 한다. 하고 싶은 얘기를 바로 쓰고 싶지만 이번엔 그 날의 상황이 영향을 미치니 한번 일요일 늦은 밤으로 올라가보자.


때는 23시를 갓 넘겼을 무렵. 회계공부를 좀 더 해야 했는데 하루동안 너무 진도를 못뺐다. 초저녁쯤에 큰맘먹고 청바지를 사러 유니클로에 갔는데 6만원이나 해서 사지 않고 돌아왔던 시간낭비가 컸다. 고민을 했다. 그냥 올스탑하고 지금 바로 자서 첫차를 타고 올라갈까, 조금만 더 하다가 내일 아침은 대충 억지로 일어나서 갈까. 하루를 너무 한심하게 보냈으므로 약간의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그렇게 새벽 4시쯤에 자서 아침에 지옥을 맛보고 겨우 일어나서 올라갔다.


123수업을 마치고 M과 순대국을 간단히 먹은 후 헤어져 벤치에 잠깐 앉아 있으니 피곤함이 쏟아졌다. 카페인에 극도로 취약한 몸이지만 나의 지금은 머뭇하면 정말 끝없이 뒤쳐지는 시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살짝 불안했지만 몬스터에너지를 한캔 사서 마셨다. 재무관리 공부를 하러 도서관1층에 갔는데 컴퓨터석에 자리가 없어 돌아나오는 길에 1년만에 동아리 동기 H를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H는 내가 휴학했을때 코트라 인턴을 다녀왔고(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걸 막을 수가 없었다, 자세한 썰은 언젠가 후술) 지금은 막학기로 원서를 여기저기 쓰는 중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던데. 잘됐으면 좋겠다.


그길로 H와 함께 본관 전산실에 가서 공부했다. 본관 전산실은 처음 가봤는데, 안이 꽤 후덥지근해 에어컨을 틀었다. 이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10분쯤 지나자 재채기에 코막힘에 아주 코가 난리가 났다. 어거지로 3시간쯤 버티고 있자니 코감기기운에 몸살까지 급격히 올라왔다. 여기 계속 있다간 죽겠다는 생각에 시청각1층으로 도망쳐나왔다. 몸상태는 최악이라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까 먹은 몬스터에너지 탓인지 정신은 또렷한 이상한 이중적인 상태가 계속됐다.


약국에서 약을 사서 먹고 죽을 먹으러 가기 전 짐을 싸서 나간다면 밥을 먹고 100% 집으로 가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짐을 일부러 도서관 4층에 풀어놓고 갔다. 예측은 정확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를 20번쯤 되뇌이며 도서관 계단을 다시 올랐다. 18시반~19시에는 몬스터에너지의 효과도 다 떨어졌는지 눈을 감는다면 3분이내에 잠들 수 있으리란 확신이 생기는 상태가 되었지만 근거없는 오기가 생겨 이악물고 버텼다. 30분쯤 버티고 나니 신기하게 훨씬 괜찮아졌다. 오~~랜만에 죄책감 없이 잠들 수 있을만큼 열심히 (노)잼관을 공부하다 22시쯤 나와 방으로 갔다.


다음날 아침. 몬스터에너지의 평 중 '내일 체력을 땡겨쓰는 느낌'이라는 평이 있었는데 상당히 정확한 평이었다.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다 1교시에 가겠다는 전날의 계획은 기억에도 없는 채로 아무도 없는 방에서 8시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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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리해둬야겠다고 마음먹은 부분이 여기다.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부산에 본사를 둔 회사의 면접을 보고 나와, 입구 앞에서 날 기다렸던 친구에게 면접질문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간단했는지를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실컷 털어놓다가, 햇빛이 비춰 불을 켜지 않아도 적당히 환한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 돌아가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는 꿈(정확히 고등학교를 자퇴한 날의 장면과 동일했다)을 꾸다가 퉁퉁 부은 눈을 뜨자 여러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왔다.

1. 안쓰러움

-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일어날 때의 그 기분과, 그것보다 더 무거운 감정으로, '내일도 똑같이 그렇게 일어날 것이라는 걸 아는' 기분, 그리고 난 앞으로 한참동안 그런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때의 기분.
-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느낀건 외로움의 부류는 아닌 것 같다. 동질감의 결여, 가 정확한 표현인듯 싶다.
- 그 모든걸 혼자 이겨냈던 어린 나에 대한 안쓰러움. 과 바보같음. 너무 안쓰러웠다. 죽기전에 타임머신이 개발된다면 이때로 꼭 돌아가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싶다.

2. 안도감(다행)

- 그리고 그 시간들을 이겨내고 조금씩이나마 무엇인가를 이뤄온 지금 내 상태에 대한 안도감. 지금 내 주위에 있는 것들. 그때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것들.

3. 지나침의 덧없음. 있는 것에 만족하며

- 그렇게 아둥바둥대며 살 필요가 있나 싶었다.
-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쉽게 하루만에 바뀐다고 생각치 않는다. 그냥 그동안의 내 방식과의 조화를 찾는 것. 그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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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위한 제언들.





- 자극 줄이기. 잔상


- 상대에 대한 존중. 이 없는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연을 이어나가지 말 것.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는 존중과 선을 갖추어야 할 것. (그리고 여태껏 내가 봐왔듯 그 존중은 대개 '사소한' 일에서 비춰지게 된다)

- 공부는 정말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집밖에서. 그런 의미에서 화요일과 목요일은 21시까지는 학교에 있다가 내려오기.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백번천번 맞는 말이다. 절과 다른 중들이 얼마나 싫든 난 조용히 평온하게 떠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불평이 나오는 순간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다. 위선자가 되는 것을 가장 주의하자. '다른' 사람은 흔하지 않지만 드물게라도 항상 만나게 되니까, 난 그런 좋은 사람들과만 웃으며 관계를 맺고 조용히 어울리면 돼. 나는 나 너는 너.


- 나는 000하는 사람들에게서 0000을 지켜내고 싶다. 과시로 가득찬 세상. 마지막으로 물들고 싶은게 있다면. 절대 따라가지 않겠어. 이상한 가치들에 좀비처럼 몰려드는 그 줄에 절대 끼지 않겠어.


하지만 뭐가 어찌됐든 절대 작아지면 안된다는 것은 더더욱 확실하고 분명한 대전제. 그러니까 나는 가방이 무거울수록 더 가슴을 펴고 걸어야 해.







2017년 9월 16일 토요일

쿨 메들리






2017년 9월 5일 화요일

need some sugar


- 첫 회계원리 수업은 대만족. 끝나고는 2시간 정도 김신행 저를 읽다가 서울대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교통편은 역시 최악이다. 노량진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경로였다. 오랜만에 가슴이 시린 감정을 다시 느꼈다. 이유는 이번에도 역시 전혀 모르겠다. 어차피 이곳과 이곳의 사람들에게도 익숙해질 것이고 머지않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부분이 되겠지만 첫 감정만큼은 기록해두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 학과수업 교재비가 없어 그동안 보관해뒀던 수험서 기타 책들 약 15kg정도를 고시촌 중고서점에 가서 팔고 6만 5천원을 받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버리는 일에 익숙해졌다.



- 오자마자 K와 잠깐 통화하고 피곤해 쓰러져 잤다. 너무 피곤했는데도 잠을 많이 설쳤다. 그렇게 또 한번 일찍 일어나 출근길 지옥철에 나가면서 문득,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결국 이런 단조로운 나날들-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자고, 또 일어나 나가고-의 반복이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빠에게 슬쩍 말해보니 그런게 인생이라는 명확하지만 당연한 답이 돌아왔다. 자꾸 정치경제학 수업 때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난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는 절대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 사실이 정답이자 동력이지 않을까 의심한다.



- 이른 점심으로는 S와 구 카빙당 자리에 새로 생긴 스테이크집에 가봤는데 영 별로였다. 스테이크를 잘 못굽는 우리 엄마보다도 더 못했다. 이제 안감. 그리고 9달만에 모르모트형 커피를 마셨다. 장사가 잘 됐는지 이전했더라.



- 정신없이 12 456789를 듣고, 5년만에 L을 만나 P와 함께 셋이서 치킨과 맥주를 간단히 먹었다. 인화원에서 한 강사는 "아닌 사람은 그냥 아닌 것이다"라고 했었는데, 그 말에도 어느정도 공감하지만 내가 더 공감하는 건 "맞는 사람은 그냥 맞는 것"이라는 (내 버전의) 반대해석. L을 처음 봤을 때도, 지금도, L은 그냥 나와 맞는 사람이다.



- 말을 더 잘할 수도 있었고 더 친절할 수도 있었다. 맞다.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피곤하면 사람은 방어적이 되는 법이고, 일련의 일들은 나라는 사람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오늘의 피곤함이 문제라고 여기기로 했다. 두가지 확실한 건 힘들 때 잘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잘하는 것이고, 이상의 이야기와는 전혀 별개로 두번 세번 네번 겸손한 사람이 되자는 것.



- 오는 길은 역시 서서 오느라 진이 다 빠졌다. 8월에는 '통학 그까짓거!' 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지옥이다. 이번주는 정말이지 다녀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져 자고, 다음날 6시반에 일어나 이리저리 낑겨서 1교시에 겨우 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사한 이후로 안산에 있을 때보다 시간은 25분정도 짧아지긴 했는데 앉아서 가지 못한다는게 너무 크다. 안산에서 다닐 때는 끝과 끝이라 오래 걸리긴 해도 제 시간에 일어나기만 하면 앉아서 갈 수 있었고 올 때는 서동탄행이나 신창행을 타면 금정까지 쭉 앉아서 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얄짤없이 서서 가고 서서 와야한다. ㅠㅠ 체력소모가 너무 크다. 이틀간 오가는 길에 연습책을 어떻게든 봤는데 솔직히 공부가 된 건 아닌 것 같다.



- 이것저것 쓰고 싶은 말이 많고 너무 두서없이 쓴 것 같아 조금 수정하고도 싶지만 그것보다는 침대에 파묻혀 자고 싶은 욕구가 크다. 내일도 일찍 나가야하고... 운동을 꼭 좀 하고 싶었는데 아직까지는 집에 도착하면 도저히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체력도 경쟁력이겠지. 멍하다. 어제오늘은 '무엇을 했고 어떻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냐'와는 별개로 최소한 잡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날이었던 것은 확실하니, 오늘은 두 발 뻗고 푹 자야겠다. 자체평점은 생략.



2017년 9월 3일 일요일

17.9.3.일요일의 기록



1. 토요일은 일어나보니 회계원리 과제가 오늘까지라는 교수님의 문자가 와 있었다. 첫수업때 못간 관계로 과제 설명을 듣지 못해 회계책을 반나절 정도 뒤적거리며 그럭저럭 써서 제출했다. 그래도 회계책을 미리 도서관에 빌려 둔 목요일의 나 아~~주 칭찬해.



2. 운동은 어제와 오늘 모두 한시간 정도 했다. 머리가 아파서 런닝머신을 30분 넘게 뛰었다. 



3. 이사한 후 피아노가 동생방에서 거실로 옮겨졌다. 유튜브에서 튜토리얼을 보면서 Survival 인트로를 연습했다. 첫 10분 정도엔 내 박자감각이 심각하게 별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계속 반복하니 좀 익숙해졌다. 기타로는 아이유(요즘 잼잼을 잘 듣고 있다)와 브콜너 노래들의 조를 바꿔보았다. 



4. 사실 답은 간단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음악과 글쓰기다. 예전에 같이 밴드를 했던 L에게 술에 잔뜩 취해 '우리 그냥 다 때려치고 같이 음악하자'고 전화했던 것만 몇번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걸로 밥벌이를 해 먹을 만한 재능과 용기 둘 다 없으니 

(1) 안정적이면서 
(2) 평균 이상의 소득(최소한 내 자식에게는 경제적 부족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을 보장하며 
(3) 고용안정성과는 별개로 연차가 쌓임에 따라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 있는(=당장 짤려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후 내 여가시간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마음의 불편함 없이' 몰두하고 싶다. 음악은 작곡을 배워보고 싶고 글은 시나리오를 써 보고 싶다. 그렇게 Survival을 치면서 그동안 막연히 해왔던 생각을 위와 같이 정리해봤다. 뭐, 지금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