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고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말하는 것들이
물론 이미 알고 있었다시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도피나 망각만은 아니었다.
잠깐 다른 각도로 zoom out 해서 내 위치를 알아보는 시간은 되었다.
평상시에, 일상적으로는 보기 어려웠던 각도로..
스물아홉. 의 2월.
나는 교차로에 서 있다.
방향은.. 찾았지만 못찾았고, 못찾았지만 찾았다고 보면 맞을 거다.
말하자면 균제상태
대학생으로서의 균제상태
군인으로서의 균제상태를 거쳐왔듯
직장인으로서의 균제상태
특정한 비율을 유지하여 외연적으로 보기에는 변동이 없다.
그리고 시간은 살같이 간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지만
섞이진 않는다.
나와 아주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나로서는 전혀 떠올리지 않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심지어 나와 똑같은 고라파덕 인형을 가지고 고라파덕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을 봐도
더는 크게 놀랍지 않다.
나와 관련없는 다른 사람에게는 무감정하다.
부러움도 연민도 애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을 반추하면 이렇게 비유하면 적절할 것 같다.
가만히 있으려는 실험실 쥐를
무작위한 강도 불규칙한 주기로 전기자극
사람을 일부러 ADHD에 걸리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조용히 한가지에만 집중하고 싶은 사람에게 갑자기 소리치기, 때리기, 물 끼얹기, 수류탄 까서 근처에 던지고 안알려주기.
얼마전 같은일 하는 동료와 200% 공감했던 내용
잠에 쉽게 들 수가 없다
일이 오버랩 해버린다
경계가 없어진다
계속해서 한 구석에 남아 있는다
신경쓰이고 우려되어 쉴 때도 마음이 편해지지가 않는다
전우.
내가 직장에서 최대한도로 이타적으로 행위하는 유일한 대상, 단순한 직장동료 이상으로 느끼는 사람, 과분하게도 내 능력을 누구보다도 appreciate 해주는 사람.
그들을 떠올릴 때 "전우"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슬프게도 우리의 일이 fucking frustrating 이라는 걸 정확히 아는 건 우리밖에 없기 때문일 테다.
무의식의 방어기제 : 괜찮아, 괜찮아 혼잣말
스스로도 무의식격발하고 깜짝깜짝 놀랄 때 많음
나쁜 쪽으로는 200번 가량의 한숨, 새벽 단기 줄담배, 편의점 4캔만원 맥주 1500ml 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방식은 의식적으로 회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나로 산다.
이제 이것은 90프로 이상 내재화가 된 것 같다.
삼성역이 좋다.
트이고 넓은 곳
밀도가 낮은 곳
넓게 채광을 받는 곳
역삼~선릉은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그 안에 있다는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빌딩들 그림자에 가려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그 길
역삼 선릉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지나쳐 삼성까지 가고 싶다.
해답은.. 없다.
없다는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근거 a와 근거 b, c를 거쳐 '해답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게 아니라
무의식중 어렴풋한 어림으로 바로 결론부터 도달하고
그 결론을 입증하는 증거들만을 발견할 뿐이다.
해답은 없지만
대안은 있다.
원시적 불능인 대안도 있고 현실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대안도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말인즉슨, 나는 변화를 선택할 수 있다.
물리적인 변화가 될 수도 있고 마음가짐의 변화가 될 수도 있고
두 가지 모두가 될 수도 있다.
더부룩히 뭉쳐있던 속의 찌꺼기들.
강제로 게워졌다는 느낌이 들만큼
대단히 높은 강도로 런닝을 해야 한다.
무던히 생각을 계속하고
담대히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이 글은 음주를 하지 않았다면 쓰이지 않았을 글이다.
그래서 나는 금번 음주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