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시50분에 하기엔 미련한 짓일테지만 지금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다. 늦은 저녁으론 삼겹살을 먹었는데 먹고 나니 기름지고 해서... 무엇보다 오늘은 꼭 남기고 싶은 소감이 있기도 하고, 살짝 뜬 기분이 되고 싶기도 하고.
어제는 날밤을 새며 심리언어학 중간고사를 봤다. 잠을 자면 깨어있을 동안 입력된 정보를 뇌가 알아서 정리한다고 하는데, 시험보기 직전에 있는 법경제학 시간에 한시간 정도 냅다 엎드려 잔(시간맞춰 깨워준 S에게 감사의 인사를) 덕분인지 그럭저럭 잘 본 것 같다. 문제는 다들 잘 본 것 같다는거...영어과 수업의 가장 큰 함정. 영어과 시험에서 못 본거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면 그건 생각보다 훨씬 큰일난거다. 어떻게 아냐고? ㅎㅎㅎㅅㅂ
끝나고는 살짝 풀린 눈으로 전산실에 가서 장학금지원서를 써서 제출했다. 2년전 시험기간에도 한번 밤새서 시험보고 끝나자마자 급하게 자소서를 썼던 적이 있는것 같은데. 그때 썼던 자소서를 노트북 keeps라는 폴더에 보관하고 있는데, 가끔 심심할 때 보면 얼마나 투박한지 웃음이 나온다. 2년전 군인정신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던 나는 뭔가 자소서의 마지막 문장을 70년대 회사면접처럼 임팩트있게 끝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 엔진과 기름얘기는 정말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ㅋㅋㅋㅋㅋ 아무래도 난 2학기가 좋다. 그냥...789를 끝내고 나오면 적당히 어둑해져있고, 날씨가 추워 한적한 밖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고, 환한 인문관에서 학식을 대충 먹고 후문에서 따뜻한 커피한잔을 사서 시청각1층에서 공부를 하는 그 일상이 좋다. 생각해보니 높은 확률로 이번이 마지막 2학기네. 그래, 이번만큼은 마지막일때 마지막인걸 알아야지.
이쯤에서 재밌는 얘기 하나.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하니 고된 개운함이란 이런건가 싶더라. 요즘 챙겨보는 신정환의 복귀작 악마의 기능재부를 보면서 잠드려고 누웠다. 보던도중 문득 이번이 몇회차인지 궁금해져 네이버에 '악마의 기능재부'라고 쳤는데 프로그램 정보가 뜨질 않았다. 한 10초간 멍때리다가 생각을 해봤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으니 폐지됐을리는 없고,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오타밖에 없다(자체 코난bgm)는 생각에 '기능재부'를 검색해봤다. 역시. 기능재부가 아니라 재능기부였다.
그리고 바로 밑에 "기능재부같이 순서가 바뀐건데 맞는 말 같은 것좀 알려주세요"라는 흥미로워보이는 지식인 질문이 있어 얼떨결에 눌렀다가 정말 5분동안 숨이 멎도록 웃었다. 개인적으로 수없는 씨박과 중고딘 알라서점에서 심장이 멈출 뻔했고 댓글에 있던 두루고기 돼지치기에서 이성을 잃을 뻔했다.
치자피즈
꽁조림 통치
노인코래방
찍 쭉진해주세요
네훈아 세?
태도의 괴민
번둥천개
껍던씸
노란계른자
알르레기
힘과 꾸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사봉아리
쯔와이스 트위
수없는 씨박
야치참채죽
치킨타올
모자리나
기능재부
허박존각
우뎅오동
메장외모리
중고딘 알라서점
밑장그만,동작빼기냐?
맥걸리와 막주
안재인과 문철수
매를노리는 먹이의 눈빛
(일간스포츠와 중앙일보 기자는 반성할 것)
난 웃음의 발화점도 굉~~장히 낮은대다 정말 정~~말 지지리도 못참는데 얼마전엔 지하철에서 "친구는 서울대공원이 서울vs공원이라는데 그건 개 병신같은 소리인거 같고"라는 중학생의 글을 보고 사당역에서 인덕원역까지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느라 눈물을 꽤 흘렸다. 인덕원역에서 내려 개찰구까지 올라가면서는 두성으로 폭소했다. 부끄러워...
아 그리고ㅋㅋㅋㅋㅋㅋ갑자기 생각난거 하나 더. 이거는 요즘 내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재무관리 교수님의 드립(젊은 교수님이셔서 평소에도 자주 치시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하시는게 너무 웃기다)인데, 황금연휴가 끝난 직후인 이번주 화요일 수업시간에 애들이 연금의 현가를 구하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을 못하자 "여러분, 연휴 끝나고 나니까 힘드시죠?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가 싶고, 내가 언제 저런걸 배웠었나 싶고... 사실 저도 그래요. 저도 오늘 아침에 딱 눈을 뜨는데 "이거 실화냐?"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구요" 하 그렇게 난 또 꺽꺽대며 눈물을 흘렸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17시마감인 자소서를 하나 썼고, 16시59분에 아슬아슬하게 냈다. 제출 후 받은 수험번호가 12500대였는데 설마 이게 지원자 수를 뜻하는 걸까-_- 그럼 대체 경쟁률이 몇대 몇이야...ㅋㅋㅋㅋㅋ 자소서 문항 중에 "지원자 본인에 대해 자유롭게 소개해주세요"라는 1600바이트짜리 문항이 하나 있었다. 나에겐 가장 까다로운 문항이었는데, 그걸 쓰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올해 여름 N은 "얘기하면서 정리되는게 있어"라는 얘기를 했고 난 얼마전 S와 통화하며 "타인과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평소에 생각치 못했던 논점들에 대해 타의로라도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에게 얘기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잘 정리되기 때문이야"라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전해주었다. 그 문항은 나에게 생각해오던 것과 잠시 묻어두었던 것 모두를 물어보았고, 난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를, 나의 과거와 미래를 정리했다.
그리고 얼마전 아침에 경희대를 산책하며 느꼈던 감정을 떠올렸다: 나와 어울리는 걸 하자. 만약 그대가 "어울리는 것을 찾아간다"가 가지는 3가지의 중의성을 찾는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해본 사람이다. 오늘은 이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한번 정리했다. 어느순간부터 난 이곳에 지나치게 솔직하고, 지나치게 무겁고, 지나치게 개인적인 글을 많이 써왔던 것 같다. monna back이 어떤 의미인지와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장문의 글을 포함해서. 그런 글들을 덜어내 작은 usb에 저장해서 금고에 넣어뒀다. 앞으로는 스무살 스물한살 때,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오던 때, 별다른 근심걱정없던 때의 나처럼 '살짝 뜬' 기분의 글만 남겨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게 나를 속이는 것이 되지 않게도 할 거고. ㅎㅎ
나중에 써야지 나중에 써야지 하고 미뤄뒀던 유튜브 Red 무료체험을 오늘 시작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서도 라이브 영상을 들을 수 있다니 세상에. 이번주 신정환의 기능재부에선 오랜만에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을 들어서 좋았었다. 노인코래방에 가면 항상 부르는 노래이자 너무 힘들었던 올해 겨울에 항상 들었던 2곡 중 한곡. 다른 하나는 Colonel of gambling, lying company라는 인디밴드가 편곡한 sublime의 santeria. 이 두 노래는 아직까지도 반주만 들어도 세탁기 물냄새가 코끝에 생생하고 가슴이 짠해진다.
투투 라이브를 듣는겸 재생목록에 코요태 라이브도 같이 넣어 들었는데 와 신지 풋풋할때 진짜 너무 귀여운거 아닌가. 심쿵했다. 초딩일때 그렇게 좋아할만 했다. 성대결절 전이라 라이브도 장난없다. 난 김종민 같은 성격의 사람도 무조건 호(好)지만 코요태는 신지-차승민-김구였을 때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다. (초딩 ㅈㅇ이가 너무나 좋아했던 코요태와 쿨 얘기는 언젠가 자세히 후술) 김지훈씨는 살아계셨다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회상되는, 불호가 없는 가수였을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전 모르겠어요 형, 항상 아쉬울 때 그만하면 어느정도 맞는 선택이더라구요.
(순정에서 신지 특유의 목소리가 딱 드러나기 시작하는
"다시 생각해봐 내게 이러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