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 2명이 있었다. 우리는 같이 스타프라자 옥상에서 트램폴린(퐁퐁이라고 불렀다)을 탔고, pc방에서 500원어치 게임을 했고,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를 쳤고, 놀이터 의자에 앉아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재구성했는지, 과연 A day in the life는 비틀즈 최대의 명곡인지 기준은 음악성이냐 대중성이냐 등등에 대해 매일같이 치고박고 싸웠다. 졸업할때쯤 되어 한명은 외국으로 훌쩍 떠났고 한명은 다른 중학교로 배정받은후 이사를 갔다. 그렇게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내 옆에서 사라졌는데, 마지막으로 보던 날 나는 무려 초딩주제에 인연이 있으면 또 보겠지,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나는 14살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사람이 바글바글한 놀이공원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이후로 난 한참동안 혼자 있는걸 편해하고 좋아했었다. 누군가와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는걸 꺼렸다. 그냥 가끔 심심할때 만나서 걷고, 얘기하고, 그정도면 충분했다.
그때 들었던 앨범들이 BSB, Nsync, Westlife같은 90년대 보이밴드와, 켈리 클락슨, 그리고 마이클 잭슨. 신화 7집도 샀었는데 그래서인지 신화 6명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전혀 불호가 없다. 그냥 그형들은 옛날 그대로 재밌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에이브릴 라빈이 커버한 Adia는 내가 중2때 들었던 어쿠스틱 라이브 앨범 Control room에 있다. 오늘은 우연히 반바지를 사러 상설할인매장에 들렀다가 Control room 버전의 스케이터 보이 (브릿지가 지나치게 좋음) 를 들은게 반가워 오랜만에 앨범을 다시 듣다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Adia를 마주쳤다.
15살땐 생각도 못했던 일들을 이제 난 쉽게 할 수 있다. 구글에 Adia chords라고 검색만 하면 언제든 쉽게 기타로 칠 수 있고, 가사를 들으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이젠 D폼으로도 Eb를 잡고, 내 음역대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there ain't no one to buy our innocence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나에게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얼마전 나온 검정치마 3집. 두어곡을 빼면 이젠 내 취향에 맞질 않는다. 기다려왔던 일들은 막상 지나고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크진 않다. 옛날에 누가 술자리에서 '그리운건 그때인가 그대인가'라는 싸이월드에서나 볼법한 말을 한적이 있는데. 오늘의 나는 '그때'가 정답이 확실하다고 말해줄 수 있다. 담배도 사실 담배성분 때문에 피운다기보다는 그냥 나와서 쉬고 바람쐬고 잠깐 생각에 잠기는 그 시간이 좋아서 피우는거 아니야?
지금같은 어느 여름날 행정반에서 상황대기를 하며 후임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난 하루뒤 한달뒤 일년뒤 내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있어. 바로 여기서 짬밥을 먹고 있겠지. 난 예상되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싶어'라고 말했었다. 예측가능성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정말.
딱 한번만 산대잖아? 하고싶은 것들 중엔 안되는 것도 많으니까 난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건 다 하고 살래. 충동이란 단어로 덮어두지 않을거야. 시간을 보낼수록 더 신나고 가슴뛰는 많은걸 할 수 있게 될거고 그렇게 될거야. 그러니까 나이를 들어가는건 즐거운 일이고, 내 뒤로 흘러가는 시간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