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6 (월)
지금은? 아침(?) 10시40분. 명사십리해수욕장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 해수욕장에 안어울릴듯 어울리는 소나무 한 그루가 여행기를 쓰는 날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해가 뜨니까 훨씬 따뜻하다. 사실 여기는 저녁에도 그렇게 춥지 않다. 역시 아래지방이 살기가 좋은 것 같다. 언젠가 가정을 꾸리게 되면 북위 36도 이남이 고향인 친구를 만나 따뜻한 아래쪽에 연고를 두고 싶다.ㅋㅋㅋㅋ
알아보니 원래 계획했던 고금도루트보다 왔던길로 되돌아가는 루트(완도 --> 목포)가 훨씬 빨라서(하루를 단축할만큼) 그길로 가기로 했다. 단 목포에서 KTX를 타는 대신 영암군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올라갈 예정이다. 먹는거에 돈을 아끼지 않았더니 돈이 부족해서 KTX를 못탄다. 영암에는 월출산이라는 괜찮은 산이 있다는데 갈 지는 아직 미지수다. 어제 저녁밥을 먹은 횟집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어제는 전복삼겹살을 먹었는데 뭐 특별한 건줄 알았더니 전복 2개에 삼겹살이었다. 이틀동안 꽤 피곤했었나 보다. 7시에 깨서 바닷가를 좀 걷다가 다시 돌아와서 10시까지 늦잠을 잤다.
(아침 7시, 아무도 없는 겨울의 바닷가)
문제는 씻을 때였다. 따뜻한 물이 계속 나오다가 갑자기 물이 차가워졌다. 찬물이 너무 싫어서 그냥 머리만 물로 감고 몸은 완도터미널 옆에 있던 사우나에서 씻기로 했다. 이렇게 추운게 싫어서야 군대나 갈 수 있을런지. 씻고 나와 환한 해수욕장을 걸었다.
이야~ 난 정말 운이 좋다. 딱 완도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기사분께서 땅을 쳐다보며 걷는 나를 지나치며 빵빵---하셨고 버스랑 거리가 꽤 거리가 있었는데 기다려 주셨다. 버스에 올라타며 애정이 듬뿍 담긴 눈인사를 해드렸는데 생각해보니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군... 어제 버스에서 내렸던 곳이 꽤 멀어서 조금 걱정했었는데(게다가 이런 작은 마을에 이런 버스가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어제 밤늦게 민박집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채로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명사십리 해수욕장까지 걸어갈때는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가로등도 없고 차도 없고....불빛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나쁜일 당하면 정말 쥐도새도 모르게 가겠구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완전 온몸에 긴장하고 걷다가 고양이를 마주쳐서 심장마비 걸릴뻔했다.ㅋㅋㅋ
지금은 영암가는 버스 안. 완도에 돌아와서는 최경주공원에 들렀다. 주변에 공원이 잘 되어 있어서 해가 질 때까지 걸어다녔다. 공책을 찢어
free world
full of beauty
today I swim
better by myself
라는 글귀를 적어 완도타워 꼭대기 구석에 몰래 끼워넣고 왔다. 완도는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다. 이렇게 대책없이 떠났는데도 이렇게 맘에 쏙 드는 곳을 만나다니. 어렴풋한 느낌이 온다. 이곳에 다시 오는건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난 후가 될 거라는게.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 옆엔 누가 있을까. 지금 가지지 못한 것들을 그때는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다. 터미널까지 걸어가면서는 갑자기 터보의 회상("보이지 않니~") 멜로디가 맴돌아 한참을 부르며 노을지는 바닷가를 마지막으로 감상했다. 도중에 한번 잠깐 이유없이 울컥했지만 금새 참아냈다. 난 이정도로 값싼 눈물 흘리지 않는다고.ㅋㅋㅋㅋ 피곤하지만 잠을 잘 수가 없다. 종착역이 광주라서 잠들어버리면 완전 동선이 꼬인다. 잘 깨어있다가 영암에서 내려야된다. 오른쪽엔 장도(청해진 유적지)가 보인다. 딱 봐도 잘 꾸며놓았다. 완도에 도착한 날에 여길 걸어서 가려고 했었다니. 진짜 거리개념이 없는 멍청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