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1일 수요일

손이 닿는 거리에

회기동 K의 방에서 3시간쯤 자고 아침6시쯤 일찍 나왔다. 가난한 나에게 항상 무료로 방을 빌려주는 착한 임대인 K는 요즘 완전 웃기다. 군전역후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K는 외대생임에도 불구하고 회기에 방을 잡게 된다. 그렇게 어연 2년차 회기주민이 되어가는 K, 요즘은 학교까지 걸어가는게 너무나 귀찮아 아예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겨 이문동에 있는 지인 방에서 잔다고 한다.ㅋㅋㅋㅋㅋ K만큼은 내가 경제력을 갖추게 되는 그날 정말 비싼 한정식집에서 정말 비싼 전통주를 사줄 예정이다. 말썽꾸러기 멍렬이는 잠깐 고민해보겠지만 안데려가면 섭섭하니 같이 데려가게 되겠지?


언제나처럼 버거킹에서 간단히 아침밥을 사서 나오는데 문득 오랜만에 경희대를 거쳐서 학교에 가고 싶어졌다. 1교시가 시청각건물 수업이기도 했고. 이렇게 가끔씩 새로운 걸 과감히 해야 설레고 들뜬다. 




엎어지면 코닿는 거리에 있는 우리의 좋은 이웃 경희대. [매년 외대의 신입생은 등교 첫날 외대앞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경희대 평화의전당을 보고 '저 웅장한 곳이 외대구나...'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평화의전당을 향해 걸어오다 문득 작은 언덕을 지나는데 알고보니 그 언덕이 외대였다]는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사실 경희대는 (종합대학답게) 사람이 너무 많아 평소에는 가기가 많이 꺼려진다. 난 왜 그렇게 북적이는게 싫은지 원. 사실 이유는 어렴풋이 짐작은 가지만 완전 다른 얘기를 깊게 해야하니 언젠가 후술. 이렇게 한적하니 얼마나 좋던지. 1학년땐 선배들 손잡고 맛있는거 먹으러 많이 왔었는데.




음 전날에 비가 왔던걸로 기억하는데 잔디에 물을 준다. 잔디를 벌크업 시키려나 보다.



작년에 학식먹으러 몇번 왔을때 이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났다. 난 그때보단 조용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여기는 1학년때부터 몇번이고 캔맥주를 들고 왔던 곳이다. 이런 널찍하고 계단식 광장이 참 좋다. 잊고있던 광운대, 국민대, 교대의 그곳들도 한번씩 기억을 해봤다.


경희대를 빠져나올 때쯤, "이런게" 나랑 어울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난 사람이 없는 곳에선 혼자인게 더 좋다. 내가 쓰는 '혼자'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는다는 의미보단 그 장소에 내가 혼자인 게 좋다는 의미. 맞아. 거짓말을 할 순 없으니까.





요즘은 와인을 마신다. 밖에서 와인을 곁들일 만한 음식을 먹는 일은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니까 생략하고, 그냥 자기 전에 스탠드만 켜놓고 한잔 홀짝하는게 좋다(두잔 홀짝하면 더 좋긴하다). 소주는 너무 쓰고 맥주는 너무 더부룩하고...

복학학기에는 친한 동기 무려 3명이 교내 와인동아리에 같이 들어가자고 꼬드긴 적이 있었다. 술김에 같이 지원서를 냈지만 학점에 미친 복학생이었던 난 다음날 술깨고 바로 취소했었지. 만약 그때 같이 들어갔었으면 지금에서야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아마 점을 이었다며 스티브 잡스를 열렬히 찬양하고 있지 않았을까.


추석때는 견과류에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실컷 몰아봤다. 특히 녹터널 애니멀즈의 잔상은 정말 진했다. 이불 속이 어찌나 아늑하던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이불 이불 하는지 알것 같더라니까. 딱 귀여운 시츄 한마리(알다시피 이름은 로미로 내정)만 있었으면 난 10일내내 집밖에 나가지 않았을거야... 그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십몇년만에 엄마에게 등짝스매싱을 맞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여유로운 황금연휴였다. 이제부터야말로 3주 중간고사 → A매치 필기시험  신용분석사 시험 으로 이어지는 지옥주가 시작되는데 와인의 힘을 몰래몰래 빌려 잘 해보려고.ㅎㅎ